인생도전! 창업 스토리 ④ 이오에스 김미경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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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김미경 이오에스 대표가 인쇄회로기판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1인 기업으로 출발한 지 7년 만에 인쇄회로기판 제조업체를 인수해 350억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봉석 기자]


“젊은 여성이란 프리미엄이 아무래도 사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죠.”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생산업체인 이오에스(EOS)의 김미경(38) 대표는 25세 때부터 ‘사장님’ 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임직원 250명에 35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번듯한 기업을 이끌고 있지만 그의 출발은 ‘1인 기업’이었다. PCB는 반도체·스위치 등의 전기부품들이 납땜되는 얇은 판으로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간다.

 김 대표는 전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컴퓨터지원설계(CAD) 회사에서 3년 남짓 근무하다 창업에 눈을 떴다. 당시 업그레이드된 설계프로그램인 ‘멘토 그래픽스’에 대한 교육을 받다 프리랜서 영업을 하는 강사에게 매료됐던 것. 월급쟁이에서 벗어나 사업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된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그 강사를 따라다니며 PCB 영업을 배워 나갔다. 타고난 끼였을까. 6개월간의 학습 끝에 자신감이 생긴 그는 1997년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서 과감하게 창업에 나섰다. 창업자금 1000만원은 사무실 임대료를 내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컴퓨터는 중고를 얻고, 책상 등 집기는 할부로 장만해야 했다. 가격이 1억원이나 하던 멘토 그래픽스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구로디지털단지 내에 멘토 그래픽스를 보유한 회사를 찾아가 무작정 빌려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졸랐어요. 몇 차례 거절을 당한 끝에 어렵사리 허락을 받아냈어요. 지금 생각해도 참 당돌했던 거 같아요.”

 그는 중소기업에 다니며 안면을 익혀둔 삼성·LG전자 관계자 등을 통해 PCB 설계도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나 홀로 기업이다 보니 낮에는 영업하고 밤에는 설계하는 고단한 생활이 이어졌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회사 소파에서 잠을 잤습니다. 선머슴처럼 일만 하고 다녔죠.” 여성의 꼼꼼함과 섬세함을 무기로 완벽한 납품을 하자 PCB 설계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다는 입소문이 번져 나갔다. 마침 벤처 창업 열풍이 불면서 PCB 수요가 급증하는 운도 따랐다. 영업을 하면서 알게 된 지인들이 창업을 하면서 주문이 쏟아졌다. 직원도 99년 4명, 2001년 10명으로 늘려갔다.

 그가 창업 때 지은 회사 이름 EOS는 ‘Electronic Onestop Service’의 약자. 설계업으로 시작했지만 향후 제조업까지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기회를 노리던 그는 2004년 3월 인천 PCB 제조업체 하이텍의 일부 공장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당시 그 회사의 과장으로 근무 중이던 남편으로부터 듣게 됐다. 인수자금은 모아 놓은 돈과 대출로 마련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경매 시초가는 60억원이었으나 유찰이 계속돼 결국 30억원에 낙찰받았다. 당시 하이텍 공장 매출은 이오에스의 열 배가 넘는 130억원이었다. 새우가 고래를 삼킨 셈이었다.

 ‘자영업’ 규모에서 덩치 큰 회사로 변하다 보니 많은 것이 힘들어졌다. 직원 숫자가 적었을 땐 2박3일 워크숍도 쉽게 갔지만 회사가 커지니 쉽사리 추진하지 못했다. 이에 기존 직원들의 불만이 쌓이면서 급기야 회사를 떠나는 사람도 생겼다. 더욱이 제조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견기업에 수천만원어치의 PCB 완제품을 납품했다가 부도를 맞기도 했다. 이후 그는 아무 설명 없이 결제일을 넘기거나, 결제는 하지 않고 납품 수량만 늘리는 회사와는 거래를 하지 않는 원칙을 세웠다. 납품회사에 휘둘리는 것을 막기 위해 한 회사 물량이 전체 매출액의 2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거래처가 500여 곳에 이른다. 이오에스는 순이익의 5%를 꾸준히 기술개발에 투자해온 덕분에 방위산업과 우주항공산업에서 사용하는 PCB인 ‘리지드 플렉서블(Rigid Flexible)’ 생산기술도 확보했다. 극한 환경에서도 변형이 없어야 하는 하이테크 제품이어서 개당 1000만원에 이른다. 최근 이 회사는 이스라엘 방위산업체 IAI에 이 제품을 수출하기도 했다.

 요즘 그는 이오에스 브랜드로 일반 소비자와 만나는 사업을 구상 중이다. 전자 완제품 제조업에 나서려는 것이다. 그는 “창업 당시였다면 벌써 실행에 옮겼겠지만, 많은 식구들을 책임져야 하다 보니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며 “1~2년 후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봉석 기자

김미경 대표 약력

1973년 경남 진해 출생

95년 동양공업전문대학 졸업

94~96년 컴퓨터 설계회사 근무

97년 ‘1인 기업’ 이오에스 설립

2004년 하이텍 공장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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