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500조짜리 메가뱅크가 최선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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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선 결과가 좋을 수 없다. 시작이 잘못됐음을 중간에 깨닫건, 마지막에 깨닫건 다시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애써 끼운 단추를 풀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번잡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도 첫걸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최근 불거져 나오고 있는 산은지주의 우리금융 인수와 메가뱅크(초대형 은행) 논의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메가뱅크론 주창자격인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은 “산은지주가 우리금융 인수에 참여할지는 정부가 정하는 거다. 나에게 그 문제를 묻는 것은 (퇴임한) 이학수 고문에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후계자를 물어보는 셈”이라며 선을 긋는다. 하지만 이미 강 회장과 금융당국 간에 교감이 형성되고 있음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그동안 언급을 꺼리던 산은지주 관계자들도 돌연 이번 주말부터 설명 자료를 배포하며 여론 조성에 나서고 있다. ‘경제 규모 10위권인 우리나라의 최대 금융회사가 세계 71위에 불과하다”는 내용이다. 물론 공감 가는 부분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금융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필요하다’는 말을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

 하지만 메가뱅크란 그럴듯한 단어 하나에 민영화와 시너지 효과라는 또 다른 핵심가치는 무시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앞서 지난해 우리금융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너무 큰 덩치 탓에 인수자를 찾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자산 350조원 되는 우리금융에 자산 160조원인 산은금융까지 합쳐 자산 500조원이 넘는 거대 국영 은행을 만들어 놓고 기업공개(IPO)·블록세일 등을 통해 민영화할 수 있다는 산은 주장은 너무도 무책임해 보인다. 게다가 국영기업인 산은지주가 내놓은 입찰대금으로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 모순이다. 시너지 측면에서도 기업금융의 중복 등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다. 중국·일본 은행들은 자산 규모론 세계 최대 수준이지만 국제 금융시장에서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규모보다는 효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가장 후퇴한 부문이 금융 부문이라는 얘기가 많다. 주요 4개 금융지주 회장은 대통령의 측근으로 채워져 있다. 혹시 정부가 이런 부정적 평가를 만회하려 준비한 한 방이 산은 중심의 메가뱅크라면 “이건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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