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서울시가 보여준 ‘오락가락 모피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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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보
사회부문 기자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FENDI)가 다음달 2일 한강 ‘세빛둥둥섬(플로팅아일랜드)’에서 모피 제품이 들어간 패션쇼(FENDI on Han River)를 열기로 한 것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이종현 서울시 대변인은 16일 정례브리핑을 한 자리에서 “동물 학대와 고가 모피의류에 대한 사회적 반감을 고려해 펜디 측에 모피를 제외한 패션쇼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다”며 “이 방침은 바뀌기 어렵다”고 말했다. 모피를 빼지 않으면 패션쇼를 못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이는 펜디 측이 지난 15일 “패션쇼에서 모피를 빼라는 서울시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보도자료를 낸 것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이다.

 펜디의 모피 패션쇼 개최 여부를 떠나 이번 일은 글로벌 도시를 지향하는 서울시의 일처리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인지를 드러낸 사례다. 16일 서울시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네티즌들도 “국제적 행사를 2주 전에 바꾸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건설한 세빛둥둥섬의 첫 번째 공식 행사를 모피 패션쇼로 하는 것이 적절하냐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기획 단계에서 충분히 검토됐어야 하는 일이다. 지난 3월엔 펜디사의 마이클 버크 최고경영자(CEO)까지 서울을 방문해 행사와 관련한 협의까지 했다. 지난 10일엔 서울시 스스로 모피를 포함한 패션쇼를 연다는 보도자료까지 냈다.

 하지만 서울시는 동물보호단체 등이 문제를 제기한다는 이유로 국제적인 약속을 뒤집고 말았다. 해외업체와의 약속을 깰 정도면 실무 부서의 판단은 아니다. 더구나 서울시 자신도 “이번 패션쇼는 ‘디자인 서울’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선전까지 하지 않았던가. 모피 패션쇼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에 민감하게 반응한 ‘누군가’의 변심이 결정적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대변인은 “오세훈 시장은 모르는 일”이라고 잘랐다. 하지만 대한민국 수도의 국제적 신뢰 문제가 걸린 결정을 시장 모르게 했다면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다.

양원보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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