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음식잡설 ⑥ 한식은 연구가 고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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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이탈리아 사람이 들으면 좋아할지 발끈할지 모르겠지만, 와인을 둘러싼 이야기 중에 이런 농담이 있다.

 “프랑스인은 와인을 즐기고, 영국인은 와인을 연구하며, 이탈리아인은 와인으로 여성을 유혹한다.”

 이탈리아인이 정말 카사노바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나는 관심이 없다. 어쨌든 두 라틴 쪽 사람이 와인을 마실 때 영국인은 연구를 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최고의 와인은 프랑스인이 만들지만 그 와인을 제대로 ‘분류하고 연구’한 건 영국인이었다.

 서양 요리사를 읽다 보면 뜻밖에도 한 일본인의 이름이 나온다. 쓰지 시즈오다. 그는 오랜 취재 끝에 프랑스 요리의 역사와 체계를 집대성한 걸작 『프랑스 요리 연구』를 펴냈다. 책 무게만 15㎏에 달한다고 한다. 프랑스인도 못 해낸 역사적 작업물이다. 이 일본인이 남긴 필생의 연구는 한국 요리의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이 정부의 한식 세계화 추진 ‘선언’을 돌이켜보게 한다.

 모든 연구는 무엇을 어떻게 연구할지 대상에 대한 분류에서 출발한다. 청사진 없는 연구는 미몽을 헤매게 마련이다. 우리는 한식을 팔고 홍보하려는 노력만큼 한식에 대한 기본적인 분류가 있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우리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한다는 식의 똑 떨어지는 분류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류하려는 노력은 구체성을 띠어야 한다.

 언젠가 나는 ‘표준어는 교양 있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규정하듯이 요리에도 그런 명쾌한 해석이 있는지 자문한 적이 있다. 중국에는 없다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국수인 자장면은 그렇다면 한식인가. 한식집마다 나오는, 심지어 고급 한정식에서도 빠지지 않는 마요네즈 소스의 과일 무침은?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인스턴트 라면은? 이런 음식에 한식 DNA가 있는지, 편입될 수 있는지 논의조차 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한식이라고 검증된 음식도 시공간이 달라지면서 변화하는 맛과 재료에 대한 분석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평양냉면에 메밀이 어느 정도 들어가야 하는지, 육수에 동치미를 배합하는 비율은 어떤 것인지 몇몇 호사가의 구전에 의한 전언 말고는 전문적인 분석이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니 한 나라의 수도인 서울식 김치가 어떤 식인지 대부분은 알지 못하며, 그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한식의 정체성에 대한 나름의 관심을 기울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요리도 재현해 봤고,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베푼 회갑연 메뉴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당대의 우리 음식,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에 대해서는 홀대에 그치고 있다.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조리기능사 자격증이 있거나 시험을 준비하는 이가 많다. 그런데 실기시험에 출제되는 표준 요리의 조리법에는 공식이 있다. 간장 얼마에 설탕 얼마 하는 식이다. 그 간장이 일본식 생산법에 기초한 공장 간장이라는 점과 설탕이 한식의 기본 양념으로 쓰이는 사실에 대한 토론이나 문제 제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 미국에는 ‘일식’을 표방한 한국형 식당이 크게 늘고 있다. 비빔밥·불고기·김치를 내놓고 있지만 식당 어디에도 한식이라는 말은 없다. 영어로 ‘bulgogi’라거나 ‘bibimbob’이라고 표기하면서도 말이다. 불쾌해 할 일만도 아니다. 어디까지가 우리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우리가 가장 자랑해 마지 않는 된장·고추장·간장은 더 이상 가정이나 식당에서 만들어 쓰는 재료가 아니다. 더구나 그 제조법은 일본식에 기초한 게 태반이다. 이런 형편은 다분히 한식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분류가 없었던 데 기인하는 것 같다. 정부에서는 주기적으로 인구주택 총조사를 한다. 그 항목에 무얼 먹고 마시는지는 없다. 사람은 무얼 먹느냐에 따라 정체성이 다분히 영향을 받는다. 한국인이란 어떤 의미에서 한식을 나눠먹는 집단적 유전자를 말하기도 한다. 일찍이 철학자 브리야-사바랭의 경구는 마치 우리를 두고 한 말 같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주겠다.”

 지도 없이 떠나는 길은 두렵고 위험하다. 한식 세계화도 틀림없이 지도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일 것이다.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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