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의 정치학'- 명분과 속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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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사면의 명분은 '국민화합'이다. 하지만 사면을 단행할 때마다 비판을 불렀다. 화합이 아니라 특정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봐주는 행위라 보았기 때문이다. '유권무죄'(有權無罪)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정부가 13일 대선 자금 관련 경제인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다. 정부는 여론의 향배를 의식, '국민대화합'에 '경제살리기'란 명분까지 덧붙였다. 정작 관심은 이번이 아니라 8.15 광복절 사면이다. 경제인 사면을 앞세워 대선자금 관련 정치인에 대한 사면이 후속으로 단행될 것이란 전망이 파다하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날 "광복절에 대선자금 관련 정치인 사면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정부패 근절에 대한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는 만큼 국민 화합 차원에서 여야를 통틀어 사면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단 단서는"여론이 나쁘면 못한다"는 것.

여권은 지금까지 정치인 사면의 명분을 축적해 왔다. 공직부패수사처 설립과 불법정치자금환수 특별법 제정의 추진, 고위공직자 주식 백지신탁제 도입 등을 통해 부정부패 단절 의지를 강조했다. 지난 3월 정부.재계.정치권.시민사회 등 4대 부문 주요 인사들이 반부패 선언인 '투명사회협약'도 체결했다.

여권은 이상수 전 민주당 사무총장, 안희정 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등 대선자금 관련 인사들이 형기를 마쳤고, 김영일 한나라당 전 사무총장 등 야당 인사들도 포함하면 사면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어느 정도의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아직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한 순간에 정부의 부정부패 단절 의지가 퇴색됐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면해야" vs "과거 회귀"=정치권에선 열린우리당이 사면에 적극적이다. 당내엔 대선자금 문제로 구속됐던 인사들에 대한 동정론이 많다. 문희상 의장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에게 8.15 사면을 건의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의원도 "앞으로 적용할 제도를 엄격하게 만든 만큼 지난 시기에 대한 문제는 빨리 털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도 불법 대선자금 혐의로 처벌받은 김영일.최돈웅 전 의원 등이 사면되길 바라고 있다. 다만 석탄일 사면에 노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포함된 점 등에는 비판적 자세를 보인다. 박근혜 대표는 "대통령 사면권은 대통령 개인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 모두가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이낙연 원내대표도 "참여정부 출범 이전에 대해선 용서해야 한다"고 했다.

반발은 민노당이나 시민단체 등이 거세다. 노회찬 의원은 8.15 사면 가능성에 대해 "여론이 나쁜데도 매 한 대 맞고 가겠다는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경실련 윤순철 정책실장도 "과거 불법행위에 대해 덮고 넘어가자고 하면 과거 정부와 다를 게 뭐냐"고 주장했다.

신용호.강주안.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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