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박태준 회장 21년 만에 온 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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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아래줄 가운데)이 15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K-리그 포항과 전북의 경기에 앞서 포항 선수들과 기념촬영 하고 있다. [포항=연합뉴스]


포항의 홈 경기가 열리는 날 경기장 북쪽 응원석에는 낯익은 얼굴을 프린트한 걸개가 걸린다. 박태준(84) 포스코 명예회장이다. 걸개를 제작한 포항의 응원 동아리 ‘울트라 라반테’는 “박 회장님은 스틸야드(포항의 홈경기장)의 아버지와 같다”고 말한다.

 박 회장의 축구 사랑은 각별하다. 1968년 포항제철 초대 사장에 부임한 뒤 73년 포항제철 실업축구팀(현 포항 스틸러스)을 창단했다. 박 회장은 자서전에서 “한국전쟁이 남긴 배고픔 속에서도 우리 국민은 축구를 사랑했다. 축구는 곧 국기였다. 이것에 내가 축구를 사랑한 첫 번째 이유다. 빈곤에 빠진 우리가 축구에선 일본을 이겼다. 스포츠 경기, 특히 축구에서 일본을 이겼을 때 국민은 열광했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다”라고 썼다. 90년에는 국내 최초의 축구 전용구장 ‘스틸야드’를 지었다.

 박 회장이 15일 준공 21년 만에 처음으로 K-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스틸야드를 찾았다. 황선홍 감독은 경기 전 박 회장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포항에 처음 입단했을 때였다. (홍)명보와 함께 회장님 집무실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책상에 앉아 계셨고, 한 10여 m쯤 뒤에서 인사를 드리는 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너희가 대한민국에서 축구 제일 잘하는 선수들이냐’며 반겨 주셨다. 지금도 박 회장님 하면 그때의 위엄이 떠오른다.” 황 감독은 “경기 전 젊은 선수들에게 박 회장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최근에 포항에 입단한 선수들은 회장님을 잘 모르고 있기에 ‘우리가 여기서 축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 분이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의 눈빛이 변했다”고 말했다.

 경기 시작 15분 전. 박 회장이 스틸야드에 도착했다. 박 회장은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김정남 프로축구연맹 부회장 등과 차례로 인사했다. 황 감독을 보자 “어, 오랜만이다”라며 밝게 웃었다. 자세는 꼿꼿했다. 그라운드에 박 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응원단은 “박태준”을 연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스틸야드에 혼을 불어넣은 박 회장의 기운을 받았을까. 포항은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K-리그 선두로 치솟았다. 전반 전북의 이동국과 박원재에게 골을 허용해 0-2로 뒤졌지만 후반 11분 신형민이 헤딩으로 추격골을 터뜨렸고 후반 27분과 34분 슈바가 두 골을 몰아넣었다. 포항은 6승3무1패(승점 21)가 되며 2주 만에 1위 자리에 올라섰고, 6승1무3패(승점 19)의 전북은 2위로 내려앉았다.

 박 회장은 경기가 끝나자 선수들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냈다. 포항의 토박이 스타 황진성은 “스승의 날 박 회장님께 승리를 선물해 기쁘다”며 웃었다.

포항=이정찬 기자

◆프로축구 전적

15일 ▶인천 0-0 부산 ▶서울 3-1 경남

▶포항 3-2 전북 ▶제주 1-0 울산

▶성남 1-1 수원

14일 ▶전남 2-0 대전 ▶광주 1-0 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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