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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외환은행을 언제까지 표류시킬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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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금융위원회가 손을 들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적격성 여부와,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매입 승인에 대한 판단을 또다시 유보했다. 외환은행 매각은 앞으로 2~3년 더 기다려야 가닥을 잡을 것 같다. 금융위의 난감한 입장을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섣부른 결정보다 법리적 판단에 따르는 게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책임 있는 금융당국이 보신주의(保身主義)만 뒤쫓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과연 금융시장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든, 금융위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현실은 별로 달라질 게 없다. 외환카드 합병 당시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주가조작 사건이 무죄를 받으면 정상매각이 가능하다. 거꾸로 유죄 판결이 나와 설사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박탈당한 론스타가 ‘강제 매각’ 명령을 받는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론스타는 6개월 이내에 외환은행 지분을 장외 블록세일로 팔아 치우고 손을 털면 된다.

 이미 2조원의 투자 원금을 모두 회수한 론스타는 앞으로 한층 가혹하게 배당금(配當金)을 챙길 게 분명하다. 외환은행에 쌓인 현대건설 매각대금은 물론 내년께 들어올 하이닉스 매각대금까지 계속 뽑아갈 것이다. 외환은행 지분은 느긋하게 제3자에게 넘기면 되니, 론스타로선 전혀 손해 볼 장사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최대의 피해자는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이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매입을 전제로 유상증자에 참여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아우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외환은행도 경쟁력을 잃고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문제는 누구보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금융당국이 책임 있는 결정을 미뤘다는 점이다. 만의 하나 ‘변양호 신드롬(문책이 두려워 정책 결정을 미루는 현상)’이 재연된 것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앞으로 국제 금융위기의 쓰나미가 밀려올 때 과연 과감하고 신속한 대처에 나설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외환은행 매각은 HSBC의 계약 파기에 이어 세 번째 차질을 빚게 됐다. 이제라도 법원이 조속히 법적 절차를 마무리 짓고 금융당국도 소신 있는 정책 결정에 나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