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잣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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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호 35면

G2의 장관들이 무릎을 맞댄 미ㆍ중 전략경제대화가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렸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공자의 후예들 앞에서 문자를 썼다. “逢山開道, 遇水架橋(산을 만나면 길을 닦고, 강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 미국이 길을 닦고 중국이 다리를 놓으며 세계의 정치경제 질서를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대미 외교와 대중 외교 양쪽 모두 중요하고, 그 배합비율을 절묘하게 유지하는 건 더더욱 중요한 일이다. 혹자는 미국이란 조강지처와 중국이란 새 애인 사이에서 불륜외교를 펼쳐야 하는 처지라고 비유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On Sunday

이명박 정부 들어 대미 외교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하지만 G2의 또 다른 축인 중국에도 똑같은 성과를 거뒀느냐고 따져보면 대답이 궁해진다. 지난해 천안함, 연평도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우리 대중외교의 무력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해가 바뀌어 주변 정세가 소강상태에 접어들긴 했지만 본질적인 정황은 지난해와 그리 변함이 없는 듯하다.

최근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 사무특별대표가 서울에 왔다 갔다. 언론에는 남북대화를 먼저 하고 북미 대화를 거쳐 6자회담으로 간다는 ‘3단계 접근법’에 한ㆍ중 양측이 의견 일치를 봤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명칭이 주는 거품을 걷어내고 본질을 따져보면 여전히 우리는 중국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6자회담 전에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문제에 대한 불법성을 확인하자는 방안에 중국이 ‘나 홀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응분의 대가나 재발방지 약속 없이 대화부터 재개하고 보자는 중국의 입장은 여전히 북한을 편드는 것으로 비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아직 수교 20년이 못 된 한중 관계의 일천함이 그 원인일 수도 있고, 신뢰관계로 맺어진 인적 네트워크의 부재가 이유일 수도 있다.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불가항력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외교 역량이나 전략적 환경과 관련된 이런 문제들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니니 시간을 두고 노력해 나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미 외교에 기울인 노력에 비해 대중 외교를 소흘히 한 탓이란 비판을 듣는다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이는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자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상대방은 여전히 그런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비공식 석상에서 중국 인사들과 접촉한 사람들이 누누이 지적하는 말이다. 설사 한때 소홀함이 있었다 해도 이를 훌훌 털어내지 못하는 중국의 대국답지 못한 태도가 야속하기도 하지만, 출범 3년 만에 세 사람째의 주중 대사를 임명한 사실을 비판하며 불쾌감을 표시하는 중국 측의 지적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 한편에선 신임 대사의 아그레망(임명동의)이 며칠 만에 나왔는지를 따져 일희일비하고, 거듭 기록이 단축되자 “한ㆍ중 관계가 초고속으로 발전한 징표”라고 자찬하는 소극(笑劇)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문이 막힐 뿐이다. 그런 셈법이 나라 사이의 관계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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