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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Biz] ‘GM 부활의 1등공신’ 댄 애커슨 회장 단독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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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부활’이란 단어론 부족하다. 미국 최대 자동차 기업인 제너럴 모터스(GM) 얘기다.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망한 회사’ 소리를 듣던 게 고작 2년 전인데, 벌써 판매량 세계 1등 복귀 얘기가 나온다. 미 언론들은 이미 “GM이 올해 일본 도요타로부터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란 칭호를 되찾아 올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흥분하고 있다. 재무실적도 좋다. 5분기 연속 흑자다. ‘왕의 귀환’을 이끌고 있는 것은 지난해 9월 취임한 댄 애커슨(63) 회장이다. 미 해군 대위 출신인 그는 스스로도 “공격적인 성격”이라고 인정하는 화끈한 남자다. j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GM(옛 GM대우)이 출범한 것에 대해 “현대·기아자동차의 안방에서 정면으로 맞붙을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선전포고로도 들릴 수 있는 발언을 했다. 그는 쓰러진 공룡을 어떻게 일으켜 세웠을까. 한국 시장에선 어떤 승부수를 띄울 계획인 걸까.

김선하 기자


 
“옛날 방식, 옛날 사업모델은 끝났다. 그간 해왔던 대로 계속 장사를 한다면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다음 단계의 표준이 필요하다.”

 올 초 애커슨 회장이 했던 연설의 일부분이다. 연설 장소가 미 자동차 업계의 최대 축제인 디트로이트 모터쇼 행사장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도발’이다. 그래서 물었다.

●‘옛날 방식’이 뭐고, ‘새 표준’은 뭔가.

 “지속 가능하지 않은 사업모델이 옛날 방식이다. 의사결정을 할 때 너무 분석에 집착해 행동을 주저하는 것도 옛날 방식이다. 내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자만해 다른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 역시 옛날 방식이다. 이러면 어떻게 되냐고?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다. ‘뉴 GM’은 전보다 훨씬 똑똑하고, 재빠르게 일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 지구촌에 깔린 GM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강한 파트너십을 구축해 전 세계의 모든 고객에게 각각 가장 적합한 차를 선보여야 한다. 이런 게 바로 다음 단계의 표준이다. 한국에 쉐보레 브랜드를 도입한 것도 이런 작업의 일환이다.”

 GM은 오랫동안 경영학 교과서였다. 수사(修辭)가 아니라 실제 그랬다. ‘차별화 전략’ ‘규모의 경제’ 같은 경영학 용어를 탄생시킨 회사가 바로 GM이다. 2007년까지 무려 77년간 세계 1위 자리를 지킨 힘이 여기서 나왔다. 미국의 대표 기업이기도 했다.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고,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영원히 번성할 것 같던 이 회사도 일단 망가지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었다. 방만 경영과 강성 노조, 과도한 인수합병(M&A)과 고유가 시대의 흐름을 제때 읽지 못한 제품 개발전략이 맞물려 위기를 불렀다.

●한번 망가졌던 회사가 어떻게 다시 살아났나.

 “회사가 파산보호 신청을 하기까지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훌륭한 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 요소들도 있었다. (취임해서 보니) 능력 있는 임직원이 많더라. 회사에 대한 헌신·열정도 대단했다. GM이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시장,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강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GM 사람들의 눈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 나는 우리 차를 세계의 다른 어떤 경쟁사 제품보다 더 뛰어나도록 만들어 놓을 작정이다.”

●취임 당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뭐였나.

 “나는 고객 중심의 더 빠르고, 미래지향적이고, 경쟁력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물론 당장 눈 앞에 닥친 과제부터 처리해야 했다.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 말이다.”

 애커슨 회장이 이끈 ‘뉴 GM’의 IPO는 대성공이었다. GM은 지난해 11월 IPO를 통해 미국 역사상 최대 액수인 231억 달러(약 25조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IPO 이후 미 정부의 GM 지분은 61%에서 33%로 뚝 떨어졌다. ‘GM’이 ‘거번먼트(Government·정부) 모터스’의 줄임말이라는 빈정거림도 사그라졌다.

●GM 합류 전에 자동차 업계 경험이 없었는데. 사내의 반발은 없었나.

 “다행히 취임 전에 GM 이사회에서 1년 정도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반발? 취임 첫날부터 모든 GM 사람들로부터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도 이런 생각엔 변함이 없다. 우리는 ‘다시 한번 최고가 되자’는 일념으로 뭉쳤다. 리더가 해야 하는 일이 뭔가. 어떤 산업이든 최고경영자(CEO)는 주변을 뛰어난 사람들로 채우고, 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일이 돌아가도록 필요한 지원을 해주면 된다. 많이 듣고, 많이 배우는 것도 중요한 자질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나는 자동차 산업을 배워나가고 있다. 하루하루 일을 할수록 이 산업에 대한 애정이 점점 더 커진다.”

 미 자동차 업계는 텃세가 센 편이다. 외부에서 수혈된 자동차 회사 CEO들이 심심찮게 사내 반발을 겪었던 이유다. 애커슨이 취임할 때 GM의 본사가 있는 미 미시간주의 한 온라인 매체는 “대체 이 애커슨이란 친구가 누구냐(Who is this Akerson guy?)”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그의 1년짜리 GM 이사회 경력이 업계 안팎에서 ‘외부인’ 취급을 받지 않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진 못했단 뜻이다. 애커슨에게 유리했던 점은 그가 취임할 때 사람들이 GM에 대해 가졌던 최대 관심사가 IPO였다는 점이다. 초대형 사모펀드 ‘칼라일 그룹’의 글로벌 M&A 책임자를 지낸 애커슨은 월가로부터 신뢰를 받는 인물이었다. 미 정부도 그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미 해군사관학교 출신인데. 군에서 배운 게 있나.

 “우리 집안은 군과 관련이 깊다. 아버지가 해군이었고, 삼촌들도 육군이나 해병대로 복무했다. 내가 가치관·개성·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분들이다. 해사를 선택한 것도 그런 영향이었을 거다. 배운 게 있냐고? 현실을 직시하되, 동시에 미래를 설계하는 법을 배웠다. 남보다 앞장서되, 남을 위해 헌신하는 법도 배웠다.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방식도 얻었다. 사관학교 시절은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졸업 후에는 미 함대에서 5년간 복무한 뒤 대위로 전역했다.”

 전역 후 그는 주로 통신·전자·금융 업계에서 경력을 쌓았다.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통신회사 MCI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냈고, 역시 통신회사인 넥스텔과 XO커뮤니케이션에서 각각 회장직을 맡았다. 전자회사 제너럴인스트루먼트의 회장 겸 CEO로도 일했다. 이후 칼라일 그룹을 거쳐 GM에 합류했다.

●회장·사장이 직업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가장 기억에 남는 회사는 어딘가.

 “MCI다. 당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회사였는데 AT&T 같은 거대 통신회사와 경쟁해야 했다. 성공하려면 신속하고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당시 MCI는 각종 신기술을 선보이며 짧은 시간 안에 통신산업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매우 고객지향적인 회사이기도 했다.”

 애커슨 회장은 GM 직원들에게 “민첩하게 움직여라” “판단은 고객이 한다”라고 강조한다. “뭔가 얻고 싶다면 생각만 하지 말고 뛰라”는 말도 종종 한다. 듣고 보니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었다.

●일부 미 언론이 당신을 ‘직설적·공격적·경쟁적’이라고 평가하던데.

 “어떤 문맥에서 그런 말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훨씬 나쁘게 불린 적도 있는데, 뭐…. 사실 이 표현, 꽤나 정확한 묘사다. 리더는 분명하게 말해야 할 땐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게 ‘직설적’인 것이라면, 나는 직설적인 사람이다. 공격적으로 경쟁하지 않는 회사치고 오래 가는 회사 없다. 나는 우리 팀, 즉 GM이 승리하길 바란다. ‘공격적인 경쟁자’가 그런 의미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겠다.”

●한국 얘기 좀 해보자. 최근 GM대우가 사명을 한국GM으로 바꿨는데.

 “한국에서 ‘대우’ 상표를 계속 쓰는 게 판매 증가는 물론 고객들의 구매욕 자극에도 도움이 안 되더라. 솔직히 그간 대우 브랜드에 매우 많은 돈을 투자했다. 불행히도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안 나왔다. 그래서 쉐보레 브랜드 도입을 결정한 거다. 일단 브랜드를 바꾸기로 결심하자 사명 변경 결정은 아주 빨리 이뤄졌다. GM과 한국GM의 관계는 부부 사이와 같다. 성공적인 결혼이 되려면 둘의 역할이 모두 중요하다. 구체적인 수치를 말해볼까? 쉐보레 브랜드를 붙인 차는 현재 세계적으로 7.4초에 1대꼴로 팔리고 있다. 한국GM은 전 세계 쉐보레 판매량의 4분의 1을 생산하는 회사다. 한국GM이 성공해야 전체 GM이 성공할 수 있단 얘기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쉐보레 브랜드가 세계적으로 성공할수록 글로벌 GM 네트워크에서 한국GM이 차지하는 위상이 올라간다.”

●한국에서 생산하는 비중을 더 높일 계획은 없나.

 “글쎄, 한국GM의 모든 공장이 이미 풀가동 중이어서…. 더 늘어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단언컨대 줄어드는 일은 없을 거다.”

●한국GM에 어떤 기대를 걸고 있나.

 “GM의 경차 쉐보레 스파크와 소형차 쉐보레 아베오는 한국에서 디자인·개발·생산을 하고 있는 차다. 역시 한국에서 디자인·생산을 맡은 준중형차 쉐보레 크루즈는 글로벌 GM 전체로 봐도 엄청난 성공작이다. 한국에 대해 말해보라면 곧바로 두 단어가 떠오른다. ‘독창성’과 ‘근면’이다. 한국GM 직원들은 놀라울 정도로 재능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전체 GM이) 글로벌 사업 방식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서 한국 직원들로부터 이런 점을 배워나가길 기대한다. 한국GM의 지금까지 성적은 매우 긍정적이다. 올 한 해 전체로 봐도 계속 성장세가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 시장엔 현대·기아자동차란 강한 경쟁 상대가 있는데.

 “현대·기아차는 훌륭한 회사고, 강력한 경쟁자다. 리더십도 훌륭하다고 본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판매 신장은 그야말로 경이롭다. 또한 계속 새로운 시장으로 뻗어나가고 있고, 끊임없이 성공에 초점을 맞춘다. 나를 밤잠 설치게 만드는 회사다. 그래서 나는 현대·기아차의 안방에서 한국GM이 이들과 정면 승부를 펼치게 된 것이 매우 기쁘다. 쉐보레 스파크·크루즈·올란도 같은 차가 한국에서 현대·기아 제품과 맞대결해 성공을 거두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말했지만 나는 경쟁심이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기는 걸 좋아한다. 나는 GM 전체가 같은 정신을 갖길 원한다. 물론 한국GM도 포함해서 말이다.”

●한국 시장에 스포츠카 쉐보레 콜벳을 내놓을 계획인데. 과연 잘 팔릴까.

 “세계 모든 나라 소비자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뛰어난 품질을 인정해 준다는 점이다. 나는 한국 소비자들이 다른 나라 소비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차를 환영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콜벳은 디자인·성능 면에서 쉐보레 브랜드의 기함(旗艦)이라고 불릴 만한 차다.”

●기업공개부터 판매 증가까지 취임 후 줄곧 성공을 거두고 있다. 주머니에 요술 지팡이라도 숨겨뒀나.

 “정말 그런 지팡이라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현실은 다르다. 우리는 아주 큰 회사다. 큰 회사는 복잡하게 마련이다. 행동에 옮기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때론 내가 생각할 때 필요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맞다. 우리 IPO는 성공했다. 많은 사람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말이다. 하지만 여기 안주할 순 없다.”

●당신의 최종 목표는 뭔가. GM을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나.

 “우리는 미래지향적인 회사가 돼야 한다. 매일매일 고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즐겁게 해야 한다. 나는 우리 팀이 계속해서 세계 최고의 차를 디자인하고, 만들고, 팔도록 밀고 나갈 것이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경영성과를 내놓도록 할 것이다. 나는 GM이 미래의 성공을 위한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종 판결은 고객이 내리는 것이다. 아무도 우리 고객들에게 ‘도대체 이 차 왜 산 거야’라고 묻지 못하게 하겠다. 쉐보레 볼트·콜벳을 비롯해 상당수 차량이 이미 이런 경지에 올라 있다. GM의 모든 차가 그렇게 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실천은 말보다 훨씬 어렵다. 우리 앞에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굳게, 굳게 믿는다.”

j칵테일 >> ‘플레이보이였던 댄, 해군사관학교에서 리더로 변신’

1970년 미국 해군사관학교 연감엔 농반진반으로 이런 표현이 적혀 있다. ‘댄은 플레이보이 고교생에서 리더로 빠르게 변모했다’. 여기 등장하는 ‘댄’이 바로 댄 애커슨 회장이다.

●연감에 나온 표현을 어떻게 생각하나.

 “사람들이 성장하는 속도는 제각각 아닌가? 10대 시절엔 주로 즐겁게 노는 걸 좋아했다. 물론 즐기는 건 지금도 좋아한다. 하지만 사관학교에선 리더십을 키우지 못한다면 오래 버틸 수가 없다. 사관생도 시절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그 시절의 경험이 상당한 영향을 줬다. 나는 지금도 경쟁을 즐기는 ‘행동파’다. 책임감과 존중이 리더십의 근본적인 기술이라고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관학교 시절 야구선수를 하다가 권투로 바꿨다던데.

 “내가 볼 땐 프로야구 선수급인데, 코치들 생각은 다르더라.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잘하진 못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집중력과 성공에 대한 열정을 권투에 쏟아부었다. 그렇다고 야구 경험이 도움이 안 됐다는 건 아니다. 뭔가를 배울 수 있고,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면 어떤 경험이든 소중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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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기길 좋아합니다 한국GM도 그렇게 하길 원합니다”

‘볼트가 상을 이렇게 많이 탔어요, 글쎄’

GM의 전기차 쉐보레 볼트는 이 회사가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는 제품이다. ‘2011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반쯤은 덕담 삼아 물었다.

● 볼트는 GM에 어떤 차인가.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고, 미래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보여주는 차다. 한마디로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차라고 할 수 있다.

볼트는 집(GM)으로 한 다발의 상장을 들고 왔다. 북미 올해의 차, 모터트렌드 선정 올해의 차, 그린카저널 선정 올해의 차….”

애커슨 회장은 볼트가 받은 8개의 상을 줄줄이 댔다. ‘공격적 경영자’의 면모만 있는 줄 알았더니, 영락없이 손자 자랑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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