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견금불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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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인생의 낭패는 대부분 물욕(物慾)과 색욕(色慾)에서 비롯된다. ‘흰술은 사람의 얼굴을 누렇게 하고, 황금은 사람의 마음을 검게 한다’는 속담은 물욕을 경계한다. 조선 초기 문신 성현(成俔)은 『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 “최영은 부친이 어렸을 때부터 늘 ‘황금을 보기를 흙같이 하라(見金如土)’고 가르쳤는데, 이 네 글자를 큰 띠(紳)에 써서 평생 차고 다녔다”고 전하고 있다. 개각 때마다 청문회를 통과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니 앞으로 고위직 진출을 꿈꾸는 사람은 최영처럼 ‘見金如土(견금여토)’를 머리맡에 써 놓을 일이다.

 어느 정도 황금은 흙처럼 볼 수 있겠지만 그것도 액수 문제다. 당(唐)나라 장고(張固)가 지은 『유한고취(幽閒鼓吹)』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당나라 상국(相國) 장연상(張延賞)이 큰 옥사(大獄)를 담당하게 되었다. 하루는 책상 위 조그마한 첩자(帖子)에 “3만관을 드릴 테니 불문에 부쳐 주기를 바란다”고 쓰여 있었다. 장연상이 더욱 엄격하게 조사하자 액수는 5만관으로 올랐다. 급기야 액수가 10만관으로 올라가자 장연광은 옥사를 덮었다. 사유를 묻자 그는 “돈 10만관이면 귀신과도 통할 수 있어서(可通神), 못할 일이 없기에 내가 화를 입을까 두려우니 그만두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는 이야기다.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속담과 들어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돈을 잘 쓰면 그 이상 좋은 것이 없다.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에 나오는 일화다. 전국시대 연 소왕(燕昭王)이 인재 구하는 방법을 곽외(郭隗)에게 물었다. 곽외는 ‘옛날 어느 임금이 천리마를 구하려고 천금(千金)을 주었는데, 1년 만에 죽은 천리마 뼈를 오백금에 사왔다’면서 ‘뼈를 오백금에 샀다는 소문이 퍼지면 반드시 산 천리마가 올 것’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일년이 못 되어 천리마 세 필이 왔다는 것이다. 곽외는 “인재를 구하시려면 먼저 신을 후히 대접하소서”라고 건의했다. 소왕이 곽외를 스승으로 모시고 황금대(黃金臺)를 쌓아 천하의 인재를 모았더니 악의(樂毅) 같은 인재가 외국에서 달려와 제(齊)나라를 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금값이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우는 와중에 재벌 3세 등이 주가조작을 하다가 또 적발되었다는 소식이다. 불법으로라도 돈 벌기에 혈안이 된 사회의 불행지수가 높지 않을 수 없다. 견금여토는 몰라도 견금불혹(見金不惑) 정도는 되어야 황금에 지배받지 않을 것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