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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건강보험료 <중> 피부양자 제도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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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은 건강보험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유자식이 상팔자’인 경우가 더 많다. 주로 직장생활을 하다 50~60대에 퇴직하면 직장 있는 자식 덕을 보는 게 건강보험이기 때문이다. 회사원 강모(56·서울 강남구)씨는 지난해 초 회사를 퇴직한 뒤 변호사인 딸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올렸다. 물론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강씨에게는 아파트 한 채와 3000만원이 넘는 금융소득이 있지만 피부양자 제도 덕을 보고 있다. 강씨는 “딸이 없었다면 지역건보 가입자가 돼 매달 30만원이 넘는 건보료를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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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양자 제도는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듯 직장건보 가입자의 부모나 자식에게 건보료를 내지 않도록 혜택을 주는 제도다. 지난해 말 현재 1962만 명으로 직장가입자 한 명당 1.54명꼴이다. 이 제도는 직장건보에만 있고 지역건보에는 없다. 이 때문에 은퇴자들의 원성을 사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4월 퇴직한 55년생(56세) 219만 명 중 피부양자가 된 사람(49만7898명)보다 지역건보 가입자가 된 사람(58만9497명)이 더 많다. 직장인 자녀가 없어 지역건보 가입자로 편입된 사람들이다. 퇴직 후 임의계속가입자가 된 4만5539명이나 의료급여 대상자가 된 2627명도 피부양자 혜택을 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임의계속가입자는 직장 때보다 지역건보료가 더 많을 때 직장 건보료를 1년간 계속 낼 수 있는 제도다.

 은퇴자에게 자식이 있더라도 일용직근로자나 보험설계사·골프장캐디 등 특수고용직 근로자라면 자식 덕을 볼 수 없다. 자식이 실업자나 학생이라도 마찬가지다. 이들 자식은 지역가입자이기 때문이다.

 피부양자 중에는 연금 소득자나 재산이 많은 사람도 있다. 경기도에 198㎡(60평형, 지방세 과세표준액 9억1000만원) 아파트에 사는 김모(76)씨는 매달 580만원의 공무원 연금을 받는다. 하지만 김씨는 직장인 자녀의 피부양자가 돼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반면 광주광역시 퇴역군인 신모(60)씨는 월 550만원의 군인연금을 받고 있는데 직장인 자녀가 없다. 그래서 연금과 아파트, 자동차 등에 대해 월 25만원의 건보료를 낸다. 만약 경기도의 김씨에게 직장인 자녀가 없다면 매달 28만원의 건보료를 내야 한다.

 피부양자 중 151만 명은 연금 소득자들이다. 연금은 아무리 많아도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 이들 중 연간 3000만원이 넘는 연금 소득자는 5만517명. 공무원·사립학교교직원·군인 출신이다.

 피부양자 제도는 1977년 의료보험을 도입할 때 함께 시행됐다. 88년 지역가입자로 확대할 때는 들어가지 않았다.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률이 낮아 피부양자에게 건보료 면제 혜택을 줄 수 없다고 판단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시골 노인이 텃밭과 집밖에 없는데도 직장인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건보료를 내고, 더 잘사는 노인은 자식에 얹혀 피부양자가 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사회보험연구실장은 “소득이 높은 사람은 자식 교육을 잘 시켜 웬만하면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된다”며 “재산이나 연금이 많은 데도 피부양자가 돼 건보에 무임승차하는 것은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박유미 기자

◆피부양자=직장가입자의 배우자·부모·자식·형제가 대상이다. 금융(이자·배당)소득이 연간 4000만원 이하, 사업자등록증이 없으면 사업·임대소득이 연간 500만원 이하, 사업자등록증이 있으면 사업·임대소득이 없어야 이름을 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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