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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4·27이 가져온 공천 개혁 … 방향은 옳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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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4·27 재·보선의 메시지는 권력을 가진 세력일수록 변화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이다. 이에 자극받은 정치권이 정치개혁에 나서고 있다. 개혁의 핵심은 밀실·폐쇄형 하향식 공천을 개방·참여형 상향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당원이 아닌 일반 유권자도 참여할 수 있는 미국식 100% 국민경선제를 사실상 당론으로 채택했다. 당 공천개혁위원장을 맡은 나경원 의원이 소속 의원 13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이런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선관위가 이미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제안한 것을 파격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민주당은 당원·국민의 투표와 배심원단의 평가를 섞은 ‘세 가지 복합 경선제’를 추진하고 있다.

 잘못된 공천제도는 한국정치 파행과 비능률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당의 집권세력이 사실상의 공천권을 행사하니 의원들은 줄서기·눈치보기에 독립성을 팔아 넘긴다. 의원 각자가 헌법기관이라는 위상은 잊어버리고 계파라는 보호막 속에 숨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갈등의 뿌리도 2008년 4월의 ‘박근혜파 학살’ 공천파동이었다. 후진적 공천은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당은 배심원단을 통해 공천을 개방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런 차에 4·27 재·보선이란 외생(外生) 변수가 정당들을 공천개혁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변화다.

 개혁엔 시동이 걸렸지만 제도를 보완해야 할 부분은 적지 않다. 완전 국민경선제의 경우 지역구마다 후보자가 난립할 경우 지명도와 지역기반에서 앞서는 현역 의원이나 지자체 선출직 등 기득권 세력이 크게 유리할 것이란 지적이 있다. 개혁의지를 가진 참신한 인물이 진입하기가 오히려 어려운 것 아니냐는 얘기다. 그러므로 정당들은 사전에 공정한 심사로 경선 후보자를 3~4인으로 압축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수백 명의 유권자를 동원해도 효과가 없도록 하기 위해 일반 국민의 투표율을 높이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민주당도 대대적인 공천 개혁을 검토하고 있다. 모든 공천에 ‘슈퍼스타 K’와 같은 ‘오디션’(토론회) 형태의 경선을 도입해 후보 자질을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지역구 경선에서는 토론회를 한 뒤 당원투표와 국민선거인단 투표, 배심원 평가를 반영하겠다고 한다. 여야는 공천제도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경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이제 서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로 여야 후보 경선을 같은 날 실시하고, 이를 중앙선관위가 관리한다면 역투표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지역별 축제로 승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민 경선에 들어가는 막대한 관리 비용을 국고로 지원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공천제도에도 문제는 있을 것이다. 중앙선관위와 여야가 머리를 맞댄다면 그러한 문제는 최소화할 수 있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주자는 시대적 요구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국민은 의원들이 소신과 합리로 투표하고 당당하게 당내 민주화를 실현해나가는 ‘꿈같은’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