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균형론’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다음은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주최 '급변하는 동북아 정새와 한국의 진로 모색'을 주제로 한 세미나 토론내용입니다.

1. 동북아 균형자론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2005년 초,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의 외교적 역할을 동북아 균형자로 선언하였다. 이를 두고 국내에서는 “시대착오적 발상”, 심지어는 “과대망상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논쟁이 뜨겁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2월 25일 국회 국정연설에서 “우리 군대는 스스로 작전권을 가진 자주군대로서 동북아시아의 균형자로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굳건히 지켜 낼 것”이라고 언급했으며, 며칠 뒤 3.1절 기념사에서도 같은 맥락의 언급이 포함되었다. 또한 3월 8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한국은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자로서 이 지역의 평화를 굳건히 지켜낼 것”을 선언하였고, 3월 22일에 있었던 육군 제3사관학교 졸업식에서도 한국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해 나갈 것”을 재차 천명하였다. 지난 2년간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 왔던 평화번영정책의 외교정책 기조가 “동북아 균형자”라는 개념으로 정리되어 드러난 것처럼 보인다. 동북아 국가들간 상생과 공생의 협력질서 창출에 한국이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한국의 균형자론의 국제정치적 배경은 무엇이며, 국제정치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론 선언 배경에는 독도문제 및 교과서 문제로 점차 격앙되어가는 한일관계가 존재하고 있으며, 북핵문제의 답보라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있다. 동북아 지역질서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 한국을 둘러싼 이 두 가지의 상황은 서로 맞물리면서 “동북아 대립질서”라는 하나의 국면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은 요인들이다. 일본은 탈냉전 이후 미국으로서 경사전략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국내정치에서도 우경화의 정치적 목소리가 이전과는 달리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독도 문제나 교과서 문제와 관련, 일본 정부의 경직된 태도가 이를 예증하고 있다. 일본 정치의 우경화, 그리고 대외 관계에서 미국과의 결속강화, 그리고 북핵 문제에 대한 강경한 태도는 동북아 지역질서에 상당한 파고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다. 이른바 반중, 반북의 미일 연합전선에 가담하고자 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외교정책 기조는 동북아 지역질서를 냉전형 대립질서로 회귀시킬 가능성이 높은 요인이다. 일본으로서는 장차 중국과의 지역적 라이벌 관계를 염두에 두고 미국과의 조기 결합이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처럼 보이나 지역 강국으로서 일본의 행보가 탄력성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런 상황으로 전개된다면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의 결합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균형자론 천명은 이러한 구도가 급속하게 형성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동북아 대립질서 속에서 한국이 짊져야 하는 부담이 현존 질서에 비해 현저히 높아지기 때문이다. 독도 및 역사교과서 문제와 관련, 대일 강경 외교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일본의 경색된 기조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일본으로서는 한국이 냉전시기처럼 미국과 일본의 연합전선에 조기 참여해 주기를 원하고 있으나 한국 정부로서는 동북아 대립질서의 급속한 국면전환과정을 한국이 현시점에서 가속화시키는 역할은 담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한 배경에서 동북아 대립질서 형성을 제어하면서 협력질서 창출을 위한 방도의 일환으로 한국의 균형자론이 대두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핵 문제는 동북아 질서를 가름하는 시금석과 같다. 동북아의 공동번영과 공생을 추진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필수적이다. 북한의 핵 보유를 점차 관련 열강들이 기정사실화해 가는 구도와 과정은 많은 갈등적 요소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하기 위해 대북 압박을 위한 국제공조에 서둘러 동참하는 전략이 오히려 한반도 긴장상황을 증폭시킬 것이라는 판단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이 제기되었다. 북한 핵 보유↔동북아 대립질서 (MD체제 구축)의 구도가 굳어지기 전에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동북아 평화를 선도하고자 하는 국제정치적 인식을 주창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여기에는 동북아에서 평화 구축과 공생질서 창출이 아직도 설득력 있는 보편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는 판단이 바탕이 되어있다. 또한 한반도의 특수성을 염두에 두면서 한반도의 국제정치축과 민족축간의 균형적 자세를 견지하려는 의도도 북핵문제와 관련된 동북아 균형자론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의 균형자론은 어떻게 읽어야 하며, 이것은 또 국제정치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약소국 외교정책에서 자율적 공간의 확보는 중요한 국가의 목표가 된다. 일반적으로 균형자론은 지역질서에서 세력의 균형을 창출하기 위한 “무게추”(balancer)의 역할로 인식된다. 19세기 영국의 역할을 염두에 둘 때 특히 그러한 개념을 연상하게 된다. 이에 따라 국력이 일정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가 과연 균형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의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국내 학계 및 언론에서는 균형자론에 대해 비관적 평가가 주류다. 이에 대해 두 가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국제관계에서 “힘”(power)의 강약 정도가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긴 하나 국제관계의 모든 영역에서 항상 힘만이 유일한 설명요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력정치를 중시하는 현실주의 패러다임이 모든 국제정치적 현상에 대해 종합적이고 완결된 설명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인정되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주의 패러다임이 국제정치학의 주류적 인식이라 인정하더라도 한국의 학계가, 더 나아가 한국인의 인식구조에서 현실주의 패러다임이 지나치게 경색된 형태로 우리의 국제정치관을 압박하고 있지 않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힘은 투사되는 상황에 따라 관련국가의 힘의 다소/강약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힘의 “상황적”(situational) 특징에도 주목해 보아야 한다. 또한 힘과 세력의 우열만으로 국제정치현상을 규명하려 할 때 비관적이고 패배주의적 인식에 쉽게 포박당할 수 있다는 점과 현실주의 패러다임 자체가 가지는 인식론적 오류에 대해 무감각해진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힘으로만 국제정치 현상을 설명할 때 약소국 외교정책론은 논의의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는 지적도 주목할 만하다.

둘째, 균형자론이 지역 국제정치에서 권력구조의 변동, 즉 세력균형체제의 새로운 창출이나 기존 세력구도를 변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외교론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이미 한미동맹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유지하고 있다. 동북아 균형자론이 한미동맹의 기존 구도를 급격히 변경하면서 새로운 세력균형 체제를 만들어가려는 의도는 아니다. 오히려 한미동맹의 골격을 해체하고 새로운 동맹관계를 모색하게 되면 이러한 한국의 행위 때문에 동북아 대립질서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상황을 자초하는 것은 현존 한국 외교에서 결코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다. 동북아 권력구조의 재편을 모색하기 위한 균형자론이 아니라 기존 한미 동맹관계를 안전판으로 유지하면서 동북아의 협력질서, 공생질서의 창출을 위한 균형외교 (balancing diplomacy)에 동북아 균형자론의 의미가 주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균형외교는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국제정치에서 균형자(balancer)의 역할을 규정할 때 세 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9세기 유럽 협조체제를 유지시켜 나갔던 영국의 역할처럼 세력균형 지향적 균형자 (balancer)가 있고, 19세기 후반기 독일 비스마르크의 외교와 같이 주변국들과 상호 신뢰구축 관계 설정을 통해 중재자 역할 (honest broker)을 했던 식의 균형자가 있을 수 있다. 또는 탈냉전기 미국이 자임했던 것같이 전세계적 수준에서, 그리고 지역적 수준에서 안정적 질서 유지를 위한 지도자적 역할로서의 안정도모자 (stabilizer) 의 역할도 있을 수 있다.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론이 새로운 세력판도 구축을 위한 편승/균형동맹이 아니라 외교적 기법으로서 “균형”이라면 한국의 역할은 영국이나 미국의 균형자 개념보다는 상대적으로 독일형에 더 가깝다 할 수 있다. 오늘날 동북아 지역질서의 문제점은 불안전의 지속 (sustained insecurity), 대립과 불신의 역사적 기억 (historical memory of distrust and confrontation), 그리고 제도적 장치의 결여 (lack of institutional settings) 등이다. 동북아의 근대사는 협력과 조화의 역사였다기 보다는 분열과 갈등의 역사였다. 근대를 넘어 탈근대의 담론들이 제기되는 시대에 동북아 질서에도 과거의 유산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지역질서가 절실히 필요하다.

21세기 동북아 시대환경을 당위론적 관점에서 고려한다면 한국이 추구해야 하는 균형외교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기능을 염두에 둬야 한다. 첫째는 동북아 지역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확대시켜 나가는 촉진자(facilitator)의 역할이다. 대립보다는 협력의 국제관계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 한국 균형외교의 목표여야 한다. 둘째, 국가간 갈등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조정자 (mediator) 역할이 필요하다. 조정이라는 외교적 과정에는 국가간 대화통로의 네트워크를 향상시킴으로써 갈등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는 예방외교적 성격도 포함된다. 셋째, 협력의 지역질서 속에서 공생의 질서, 공동번영을 도모하기 위한 국제적 아젠다를 제시하는 창안자(initiator)의 역할도 고려해야 한다. 이 세 가지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국 외교가 평화와 협력이라는 보편적 가치 위에 기반하고 있어야 한다. 그 토대 위에서 동북아 국제협력의 원칙을 선창하고 공생관계 확대를 위한 현안들을 제안하는 것이 균형외교의 기능일 것이다.

한국이 균형자 역할, 그리고 균형외교를 도모해야 하는 지역수준의 “균형”은 무엇인가? 균형이 반드시 권력구조의 균형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인식의 틀을 벗어난다면 다양한 유형의 균형을 도모할 수 있다. 균형외교를 통해 지역수준의 평형상태 (equilibrium)를 유지시키는 과정에 일조하는 것도 균형추구의 한 목표가 된다. 평형상태가 위협받게 되면 상대적 약소국에게 돌아 갈 위험부담 또한 커지기 때문이다. 균형이 갖는 다른 하나의 의미는 국가들간 “이익의 균형”이다. 심각한 이익의 불균형 상태가 협상의 기회를 축소시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외교란 관련국가들간 공유된 이익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당사국들이 확인해야 하는 이익 외의 요인들 (e.g., 인식적 불신구조)에 의해 협상이 난항을 겪을 때 제3국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조정과 중재의 외교를 통해 이익의 균형점을 찾도록 도모하는 것도 지역수준에서 추구해야 하는 균형의 하나다. 현재 북핵 문제에 대해 북한과 미국이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것도 이익의 균형점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중재자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도 북미간 이익 균형점을 찾게 해주려는 의도로 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식과 가치의 균형이다. 국제질서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 중 관념 (ideation)은 국가간 행위원칙을 규정하고 수용하는 인식적 토대가 된다. 국제관계의 행위원칙과 규칙에 대해 국가들간 인식적 괴리가 있을 때 안정적이고 협력적인 질서가 창출되기 어렵다. 예컨대 미국이 주창하는 “자유”의 확산과 민주주의의 개념이 북한 및 중국이 생각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개념과 상이하다. 이런 경우 불신과 갈등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동북아 질서에서 관련국가들간 대화를 유도하고 관념의 공감대를 확대시킬 수 있는 외교행위가 한국의 역할을 통해 촉진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균형자론이 목표로 하는 것은 그런 행위여야 한다.

2. 동북아 균형자론의 기회와 제약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한국의 외교 패러다임의 전환기적 성격을 지닌다. 탈냉전기 동북아 질서 속에서 전환기적 기본 구도는 이미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으로부터 시발되었으나 노무현 정부에 들어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동북아 평화협력 질서의 유지를 병행하는 구도 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려는 의도가 내포된 것이다. 동북아 질서의 미래상 속에서 한국의 균형자론이 일정정도 성공을 거둘지는 향후 구체적으로 모색되어야 할 외교적 노력에 달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 한국의 외교적 좌표 속에서 제시된 동북아 균형자론은 몇 가지 관점에서 한국외교사적 의미를 가진다.

첫째, 한국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의 표현이다. 19세기 한국은 자강론과 균세론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식민지화로의 길을 강요당했다. 특히 균세론은 동양 전래의 이이제이(以夷制夷)론적 개념에 기반하고 있었는데 한반도 위에 설정되었던 식민주의(colonialism)의 대립구도 속에서 한국에게 허용된 자율공간이 지나치게 협소했던 것의 결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균형자론은 그러한 역사적 교훈에 대한 21세기형 돌파구일 수 있다.

둘째, 그간 한국인의 국제정치적 인식을 장악해 왔던 수세적 대응태도의 극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냉전 이후 한반도 정치 기상도는 주로 국제정치축에 의해 설정되고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분단구조가 형성되고 남북한 대립구도 속에서 미국과의 편승동맹이 유일한 해답이라는 신념이 한국의 주류적 인식구조였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동북아의 협력질서 구축을 위해 한국이 일정정도 능동적 역할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세력균형이라는 이름의 대립질서 보다는 평화와 협력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는 의사를 능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동북아 균형자론 천명을 계기로 한국 외교에 주어질 기회는 대략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동북아 균형자론을 통해 동북아 약소국으로서 한국 외교정책에 자율성 확보의 주권개념을 표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약소국에게 자율성 확보의 주권 보호는 안보영역의 주권 확보만큼 중요하다. 안보영역의 주권확보는 기존 한미동맹의 축을 유지하고 제도적 장치들을 조정해 나가면서 가능하게 되었다. 이와 병행하여 외교적 기법으로서 균형외교는 한국에게 자유행동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자율공간의 확보가 한국의 외교정책에 목표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둘째, 동북아 불안정을 유지시켜왔던 요소에 대한 관력국가들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평화와 협력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하여 지역 질서의 아젠다를 선도해 나감으로써 궁극적으로 배타적 동맹관계에 기반한 역내질서를 동북아 집단방위, 또는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의체로 전환시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셋째, 외교적 관계의 다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동북아 평화와 협력을 위해 비단 안보적 영역의 관계 뿐 아니라 연성권력(soft power)에 기반한 관계의 확대가 모색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예컨대 문화 외교가 그것이다. 동북아 국가들간 국경을 뛰어 넘는 문화적 공감대를 확대해야 하는 필요성도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회만큼 제약도 도처에 존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약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인식적 제약요인이며, 다른 하나는 현행 동북아 국제정치의 현실적 제약요인이다. 인식적 지역요인은 첫째, 19세기 및 냉전기 인식요소의 관성이다. 힘의 논리가 국제관계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국제정치 현실주의의 경직된 사고는 균형자론의 진로를 가로막는 국내적 요소가 될 것이다. 둘째, 동북아 전반의 질서 구축과 관련된 국가간 인식문제, 즉 국제질서의 인식적 영역이다. 유럽은 공존과 협력을 넘어 통합으로 이행되고 있으나 동북아는 여전히 홉스적 무정부성에 관한 인식이 지역질서적 특징의 하나로 보인다. 물론 그것 역시 불변의 요소는 아니겠으나 평화와 협력에 관한 보편성의 문제가 개체단위의 국익 개념과의 사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인식적 괴리가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약하는 지역수준의 요소라 할 수 있다.

현실적 제약요인으로는 첫째, 현행 북핵문제의 해결구도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논의의 구도 및 해법 창출과정은 동북아 미래를 결정하는 시금석과 같다. 북핵문제가 북미간 핵보유↔대립질서 구축의 구도로 진행될 때 한국의 균형자론은 그 내용과 대안의 범위가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핵 위기를 시급히 풀어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에 대해서는 북핵의 평화적 해결이 동북아 안정적 질서 구축에 요체라는 점과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동북아 질서가 동북아 지역에서의 미국의 이익추구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해서는 핵보유로 치닫는 논리가 결국 북한의 체제를 위협하는 구도가 된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미국과 일본의 대립논리가 더 이상 경색되기 전에 6자회담을 통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균형자론은 그런 의미에서 이미 시발된 것이며, 그 일차적 평가는 북핵문제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의 균형자론을 위협하는 두 번째 제약요인은 한국 외교의 수단 가용성에 따른 제약요인이다. 동북아 협력창출을 위해 한국의 균형자론이 보편적 가치를 선창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구체적 외교행위에 따른 수단을 확보하지 못할 때 균형자론의 실천과정에 제약요인이 될 수 있다. 보편적 가치의 선창으로 “설득” (persuasion)의 단계까지는 가능한 일이겠으나, 그것과 아울러 병행되어야 할 "보상" (reward)과 “응징” (punishment)의 방도를 국제질서의 구도 속에서 어떻게 모색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특히 동북아 협력질서의 구축을 주도해 나가는 과정에서 일탈적 행위를 보이는 국가에 대해 보상의 국제구도를 주도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응징의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균형자론은 의미가 퇴색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외교는 중대한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외교적 패러다임의 전반적 변혁을 섣불리 예상할 수 있는 시점은 아니라 하더라도 환경의 변화에 따라 외교정책적 변화가 요구되고 추동되는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보다 면밀하고 구체적인 외교 전략들이 구상되고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다.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우면서 한 가지 염두에 할 점은 집권 초기 외교의 전략으로 내세웠던 실용외교와의 관계다. 실용외교는 국가의 이익추구를 위한 유연하게 전략을 모색하겠다는 의미를 가진다. 외교 전략의 “유연성”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공통의 영역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다. 동북아 협력질서를 촉진시키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유연한 외교전략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재자의 역할이나 창안자의 역할에도 유연한 기술들이 고려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동북아 협력질서의 창출을 위해 제시된 균형자론은 국제질서의 보편적 가치의 선도적 주창이라는 논리 위에서 실천적 의미를 갖는 측면이 있다는 점도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실용외교는 자칫 “기회주의 외교”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으며, 균형자론의 외교, 즉 균형외교는 자칫 “명분외교”의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보편성과 국익, 균형과 실용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간극을 어떠한 방도로 융합점을 찾아나가느냐가 앞으로 노무현 외교의 중요한 과제로 남을 것이다.

김기정 (연세대 정외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