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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입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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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성경 출애굽기는 입양 이야기로 시작한다. 히브리 여인이 생후 3개월 된 아이를 갈대 상자에 넣어 강에 띄우고, 이를 이집트의 왕녀가 거둔다. 왕녀는 아이에게 ‘물에서 건진 자’라는 뜻의 이름을 붙인다. 바로 십계명으로 유명한 모세다. 이집트 왕자로 자라 나중에 히브리 노예를 이끌고 홍해를 건너는 대서사시의 주인공이다. 반론도 있다. 『꿈의 해석』 저자 프로이트는 “모세는 왕자의 이름으로, 파라오인 람세스 모세나 투트 모세처럼 원래 이집트인”이라는 논문을 썼다.

 우리도 삼국시대부터 입양이 성행했다. 먹고살기 힘들어 아이를 남의 집 문 앞에 두거나, 자녀가 없는 집에 맡겼다. 이런 아이를 ‘업둥이’라고 했다. ‘업’은 집안의 수호신으로, 살림을 보호하고 늘리는 사람이나 동물을 지칭한다. 업둥이를 그만큼 귀하게 여긴 것이다. 복(福)덩어리가 굴러들어 왔다며 ‘얻은복이’라고도 했다. 진정한 박애정신의 발현이다. 고려시대에는 산문(山門)에 아이를 버리는 일이 잦아 업둥이 출신 고승(高僧)이 많았다고 한다.

 유교가 성행한 조선시대에는 후사(後嗣)를 위한 입양이 늘었다. 제사를 지내야 하는 것이다. 양자(養子)는 동성(同姓)이되 같은 항렬(行列)의 근친자로 했다. 그런데 조선 초기 문신(文臣) 강희안·희맹 형제에 문제가 생겼다. 동생 희맹이 숙부에 양자로 입적됐는데, 형 희안이 자손 없이 세상을 뜬 것이다. 결국 성종이 대신들의 의견을 모아 ‘파계귀종(罷繼歸宗)’을 정했다. 양자로 입양됐더라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경국대전에도 기록했다.

 ‘기른 정’이 ‘낳은 정’보다 강하다고 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희곡 ‘코카서스의 백묵원’에서 자신이 낳은 아이를 버리고 달아났다가 나중에 상속재산이 탐나 되찾으려는 총독 부인과 이 아이를 맡아 어렵사리 기른 하녀를 등장시킨다. 재판관은 백묵으로 그린 원에 아이를 두고 두 여인에게 잡아당기도록 하는데, 하녀는 아이가 아플까 봐 손을 놓는다. 재판관은 하녀의 손을 든다. 솔로몬의 지혜와 비슷하다.

 오늘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우리는 아직도 매년 1000명을 해외로 보내는 ‘입양 후진국’이다. 그런데 행정안전부의 한 직원이 자신의 아이 외에 8명을 입양해 길러왔다고 한다. 아이 중 4명은 장애아란다. 낳은 정과 기른 정을 함께 누리는 행복한 부부이자, 사랑으로 똘똘 뭉친 박애(博愛) 가정이다. 이 부부에게 자녀들은 바로 ‘업둥이’일 터다.

박종권 선임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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