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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진통 끝 복수노조 시행 코앞인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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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전운배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

복수노조 시행이 2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정부는 교육홍보, 컨설팅 등 복수노조 시행에 대비해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산업현장에서도 복수노조 시행에 대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복수노조에 앞서 지난해 7월 시행된 근로시간면제제도는 전체 사업장의 87.4%가 도입했다. 98.9%가 면제 한도를 준수하는 등 이른 시간 안에 정착단계에 진입했다.

 새 노조법은 전 근대적인 노사관계에서 벗어나 선진화의 길로 나가는 초석이다. 13년간의 힘든 진통 끝에 노사정이 합의하고 국회에서 의결해 만들어진 새 노조법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면서 근로자의 노동3권과 현장 노사관계의 안정을 적절하게 조화시켰다.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노동 후진국이라는 굴레 속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모니터링을 받아온 오명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른 나라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발전적으로 극복하고 한 단계 도약한 손색없는 제도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노동계는 근로시간면제제도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를 사실상 아예 폐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전임자 급여 노사자율’과 ‘복수노조 자율교섭 보장’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속내는 과거처럼 사용자로부터 전임자 급여를 계속 받고 싶고, 복수노조가 시행되더라도 현 노조의 교섭권은 확실히 보장받고 싶다는 것이다. 복수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는 분리될 수 없는 패키지임을 고려할 때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복수노조를 시행하지 말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반 근로자의 단결선택권 확대를 포기하더라도 기존 노조 집행부의 기득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사용자의 동의에 의한 개별교섭과 교섭단위 분리 절차가 교섭창구 단일화를 무력화시켜 소수 노조의 난립에 따른 현장의 혼란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은 기우다. 개별교섭은 노사 자치를 존중해 예외적으로 허용한 것이나 엄격한 제한이 있다. 우선 사용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동조합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14일간의 자율적 교섭창구 단일화 기간 내에서만 허용된다. 이에 반해 사전에 단체협약으로 개별교섭을 정하거나 14일의 기간 경과 후 자율교섭에 동의하더라도 이는 위법으로 무효다.

 또한 교섭단위 분리는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 형태, 교섭 관행이라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노동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매우 예외적으로만 인정된다. 따라서 개별교섭과 교섭단위 분리는 창구 단일화의 뚫린 구멍이 아니라 제도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기 위한 기능적 안정장치다. 끓는 물이 넘치지 않기 위해서는 주전자 뚜껑에 작은 구멍이 필요한데, 이를 두고 주전자 물이 샌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무릇 모든 제도가 처음 시행될 때는 불안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복수노조 제도는 노사관계 전문가들이 함께 13년간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쳤고, 최종적으로 노사정의 합의를 통해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진일보시키는 교두보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시행을 눈앞에 두고 법의 ‘재개정’ 운운하는 것은 산업현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무책임한 처사다. ‘우리 노사관계를 영원히 후진적으로 남기자’라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지금은 노사정이 힘과 지혜를 모아 새 노조법의 연착륙에 힘을 쏟을 때다.

전운배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