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통운 매각, 금호터미널에 갇혀 ‘공회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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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광주광역시 광천동에 있는 금호터미널의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올해 인수합병(M&A) 시장의 최대어라는 대한통운 매각이 시작 단계부터 제대로 꼬였다. 대한통운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금호터미널’을 원칙대로 묶어서 팔지, 아니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먼저 넘겨줄지를 두고 이해당사자 간 입장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매각 주관사인 산업은행은 당초 13일까지 최종 입찰을 받고 16일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돌연 연기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지분 매각 당사자인 아시아나항공(지분 18.96%)과 대우건설(18.62%)이 금호터미널 분리 매각 문제를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해 본입찰 안내서를 발송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양측이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 매각 일정을 늦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한통운 입찰에는 롯데·CJ·포스코가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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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M&A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을 계열사로 둔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그룹)은 최근 금호터미널을 우선적으로 인수할 수 있도록 채권단과 인수 참여업체들에 요청했다. 금호터미널은 광주 등 전국 16개 지역의 버스터미널을 관리하는 업체로 상업성이 좋은 땅을 많이 갖고 있다.

 원래 금호그룹은 금호터미널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로 자금 사정이 나빠지자 2009년 2190억원을 받고 대한통운에 넘겼다. 당시에는 계열사에서 현금을 빼간다는 비난이 있었다. 금호터미널은 금호그룹의 모태인 금호산업 고속사업부의 뿌리다. 또 고속사업부의 사업을 위해서도 필요한 자산이다. 그래서 대한통운에서 자회사 금호터미널을 떼내 대한통운만 판 뒤 금호터미널을 되사려 한다.

 하지만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된 대우건설의 셈법은 다르다. 대우건설은 금호터미널을 떼어내 금호그룹에 팔았다간 제값을 못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금호터미널을 함께 팔아 매각가치를 높이길 원한다. 특히 대한통운 인수 당시 컨소시엄 일원으로 참여했던 재무적 투자자(FI)는 더 강경하다. 분리 매각 시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FI 관계자는 “금호터미널의 매각 가치를 5000억원 이상으로 예상하지만 현재 분리매각 금액으로 거론되는 수준은 2000억원대에 불과하다”며 “분리매각을 하더라도 수의계약이 아닌 경쟁입찰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수 참여업체들도 입장이 엇갈린다. CJ·포스코는 대한통운 인수 가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분리매각을 반긴다. 이들이 눈독을 들이는 건 대한통운의 물류부문이기 때문이다. 금호터미널을 인수해 봐야 되레 운용 부담만 커진다는 생각이다.

 반면에 롯데는 일괄매각을 원한다. 대한통운의 물류 사업뿐 아니라 금호터미널이 보유한 노른자위 땅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호터미널의 알짜 땅에 마트 등을 입점시켜 유통사업을 키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매각 주관사인 산업은행은 난처해졌다.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리더라도 특정 편을 든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분리매각 여부는) 아시아나항공과 대우건설의 협의 결과를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불똥은 광주(광역시) 지역사회와 이번 입찰과는 무관한 신세계로까지 튀었다. 광주상공회의소와 민주당 광주시당 등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터미널의 지역적 상징성을 감안하고, 유통구조의 독점화 등을 막기 위해 분리매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세계는 광주 매장의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며 걱정한다. 신세계의 광주 법인인 광주신세계는 금호터미널 부지에 입점해 있는데 임대계약이 2015년 종료된다. 유통 ‘맞수’인 롯데가 금호터미널을 인수할 경우 계약 연장이 어려워질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신세계가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도 있다는 게 M&A 업계의 관측이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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