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 금 중 달랑 3개, 헛발질한 한국 태권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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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한민국은 태권도 종주국이다. 하지만 위상이 굳건한 ‘무도(武道) 태권도’와 달리 상향평준화 경향이 또렷한 ‘스포츠 태권도’에서 한국이 설 땅은 점점 좁아지는 추세다. 6일 경주에서 폐막한 2011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는 한국 태권도에 ‘현실 안주는 곧 퇴보’라는 경고 메시지를 남겼다.

 ◆남자부, 38년 만의 2위 추락=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실망스러운 성적을 냈다. 총 16개의 금메달 중 6개를 가져온다는 청사진을 마련했지만, 절반인 3개를 수확하는 데 그쳤다. 남자부에서 이대훈(68㎏ 이하급)과 조철호(87㎏ 이상급), 여자부에서 김소희(46㎏ 이하급)가 정상에 올랐다. 여자부(금1, 은2, 동3·종합점수 58점)는 중국(금2, 은2·55점)을 간발의 차로 제치고 1위를 되찾아 ‘절반의 성공’을 이뤘다. 하지만 남자부(금2, 은2·61점)는 이란(금3, 은1, 동2·74점)에 정상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내려앉았다. 1973년 대회 창설 이후 한국 남자 태권도가 정상을 놓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변화에 둔감했다=한국의 부진은 예견된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지금까지 우리 선수들은 서구 선수들에 비해 불리한 체격조건을 테크닉과 스피드로 만회해 왔다.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이탈리아·중국·태국 등 경쟁국들이 한국인 지도자들을 영입해 우리 태권도의 장점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채점 기준이 공격지향적으로 바뀐 점 또한 ‘지키는 태권도’를 앞세웠던 우리에겐 불리한 부분이다.

 몸통 보호대에 전자 센서를 부착하고 경기를 하는 ‘전자 호구’에 대한 적응 역시 부족했다. 우리 선수들이 대회 공인 전자 호구를 착용하고 훈련을 시작한 건 한 달여밖에 되지 않는다. 그동안 타사 제품을 이용해 훈련했지만, 공인 제품과 비교했을 때 감도에 차이가 있어 혼란이 가중됐다.

 ◆적응해야 살아남는다=태권도계 인사들은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류병관 용인대 교수는 “우리의 장점을 특화하든지,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테크닉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거나, 혹은 서구형 체격조건을 지닌 선수들을 집중 육성하는 등 변화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 또한 “스포츠 태권도는 더욱 공격지향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며 “전자 호구의 채점 시스템을 철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주=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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