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0대100’ … 서울 시정 마비시킬 작정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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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0% 대(對) 100%. 서울시의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제출한 조례안(條例案)을 통과시킨 비율이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결코 이성적일 수 없는 결과다.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시의회가 한나라당의 오 시장에게 거부감을 갖고 있고, 진보 성향의 곽 교육감에 호감을 보인다고 해도 이럴 순 없다. 이유가 뭐든 시민과 시정(市政)을 외면한 채 정치적 흑백논리로만 접근하면 곤란하다.

 올해 서울시의회는 오 시장이 제출한 조례안 14건 중 단 1건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아예 상임위나 본회의 문턱도 넘지 못했다.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 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안’의 경우 보상 조사를 시작할 수 없어 민원이 발생한다고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비용부담에 관한 조례안’ 등도 마찬가지다. 반면 곽 교육감이 제출한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안’ 등 6건은 예외도 없이 통과했다. 끼리끼리 편가르기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도 별로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서울시의회가 출범한 지 11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뭘 할지 물어볼 때가 됐다. 서울광장 조례 개정, 무상급식 조례 강행과 예산안 충돌 외에 머리에 뚜렷이 떠오르는 게 없다. 법적 근거도 없이 무상급식비 695억원을 신설하고, 이에 대한 주민투표를 막으려고 조례를 고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사사건건 서울시와 대립하는 정치투쟁의 이미지만 남아 있다. 시장이 밉다고 대변인실 업무추진비를 전액 삭감(削減)한 정도라면 더 이상 뭘 기대하겠는가.

 이런 파행의 책임을 시의회는 오 시장에게 돌린다. 오 시장이 민주당과 마찰을 빚으며 시의회의 시정질문에 불참해온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다수의 힘에 의지해 시정에 발목을 잡고 길들이겠다는 발상이 합리화될 수 없다. 오 시장과의 정치적 갈등과 시민을 위한 시 행정은 별개다. 시민의 삶이 우선이다. 시장과의 힘겨루기로 시간을 보내며 세비(歲費)를 받으라고 시의회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