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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공정사회 매뉴얼의 핵심, 다이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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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유재하
UCO마케팅그룹 대표이사

내가 가진 것을 친구와 나눠야 한다는 것, 남의 것에 손대지 않는 것, 잘못했을 때 사과하는 것, 늘 배우고 생각하는 것,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 언제나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는 것. 이것은 작가 로버트 풀검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에서 전한 내용이다. 우리는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이 끝없이 많다고 생각하고 항상 허기져 있다. 하지만 정말 알아야 할 것들은 모두 유치원에서 이미 배웠다는 것이다. 설사 그곳이 유치원이 아니라 초등학교든 할머니 품 안에서든 이 ‘위대한 상식’은 우리의 유년 시절에 입력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상식을 누구나 동일하게 배웠는데 왜 성인이 되어서는 사람마다 현격한 차이를 내는 걸까? 요즘 갖가지 사태를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생각해 보니 이것은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행의 여부가 차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 ‘위대한 상식’을 누구는 실행하는 착한 어른이 되고, 어떤 이들은 비상식의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걸까? 이유는 자아 존중감, 즉 자존감의 차이 때문인 것이다. 자존감이란 ‘자기 가치에 대한 자신감’을 말한다. 따라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도덕지수가 올라간다. 즉 도덕성 높은 바른 생활인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스스로 일어설 힘을 갖게 되고 세상의 잔혹한 시험 속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배운 것을 실행하는 것과 자존감은 서로 비례하며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장할수록 더욱 견고해진다.

 최근 금융비리 종결자들로 낙인찍힌 자존감 제로의 부산저축은행 얘기로 세상이 시끄럽다. 해당 은행 예금자들이 아니더라도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대통령이 소리 높인 ‘공정사회’는 눈앞에서 벌어진 ‘불공정사회’에 철퇴를 맞고 있다. ‘신용을 도둑맞았다’ ‘끗발 없어 돈 못 찾아… 이게 공정사회냐’라는 신문 헤드라인은 날이 갈수록 가슴을 치게 만든다. 이어 금감원의 유착 소식이 상세히 알려지자 민심은 폭발 직전이 되었다. 은행 측의 비리도 피가 끓는 일인데 감독해야 할 금감원이 유착돼 있다니 자존감을 버린 이 흉물들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악습의 역진화를 돌리지 못하면 국민은 정부가 리더의 자격을 포기한 것이라 진단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는 내년 선거로 나타날 것이다.

 사태 이후로 온갖 미디어에 관련 기사들이 넘쳐났고, 대통령도 금감원을 찾아 따끔한 질책을 했다지만 아직 부족하다. 분노와 질책, 그리고 이어지는 사후약방문으로 마무리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재탕 삼탕을 거듭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도 문제 해결에 대한 매뉴얼 좀 제대로 만들어 실천하자.

 우선 첫 순서는 사과부터 해야 한다. 부산저축은행이나 금감원은 예금자들과 국민에게 경위를 설명하고 사죄부터 해야 한다. 무엇을 잘못했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지를 진심으로 전달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을 대신해 질책한 것으론 안 된다. 이번 경우 국민을 위한 진정한 소통 리더십은 그들의 억울한 마음을 풀어주고 감싸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세상의 리더들이 실수하지 않으려면 리더십의 핵심이 뇌(이성)에서 심장(감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적어도 민심이 억울함을 호소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벌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당장 벌의 내용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언제까지 벌을 규정하고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공무원 비리가 드러났을 때마다 시간이 지나면 안갯속으로 사라지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 이번에 대통령이 금감원의 개혁을 전했지만 언제까지 하라는 지시가 있었는지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끝으로 강력하고 정교한 매뉴얼을 만들어 누구나 마음속의 다이몬으로 삼도록 해야 한다. 다이몬(Daimon)이란 옳지 않은 길에 접어들면 보내오는 신호로서, 개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내면의 소리다. 도덕적 해이가 번지지 않게 하려면 매뉴얼이란 적어도 이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

 어제는 어린이날이었다. 올해는 특별히 ‘어른은 어린이의 거울’이라는 말이 긴장되는 하루였다. 그들이 어른들을 보면서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그래서 그것이 국가의 자존감이 돼 줄 수 있는 그런 거울이 돼 주자. 그래도 안 되는 어른들은 유치원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유재하 UCO마케팅그룹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