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유전자 벤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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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유럽 공동연구팀은 최근 사람의 21번 염색체 유전자 서열을 다음달 중 완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팀이 지난해 말 22번 염색체의 유전자를 해독한지 불과 한달여 만의 일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유전자 전쟁'' 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한다.

유전자 해독과 그 ''전쟁'' 이 갖는 의미를 짚어본다.

◇ 왜 ''유전자'' 인가

''셀레라'' (CELERA)라는 미국 회사가 있다. 수도 워싱턴 근처에 있는데 유전자 사업이 전문이다. 1990년대 중반 문을 연 이 회사는 유전자의 서열을 분석한 결과, 즉 유전자 정보를 팔아먹고 산다. 이런 업종은 셀레라가 세계 최초다.

생명공학연구소 이대실 박사는 이 회사를 두고 "지금은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머지않아 GM이나 코카콜라 혹은 IBM만큼 질리게 이름을 들을지 모르겠다" 고 말한다.

지난해 셀레라의 영업실적 변화는 그 힌트가 될 수 있다. 1분기 3백90만달러였던 매출액이 불과 6개월 사이 8백30만달러(3분기)로 껑충 뛴 것이다.

이 회사는 지난 주중에는 "인간 유전자 서열의 90%를 읽어냈다" 며 "미국 정부보다 앞서 올 여름께 인간 유전자 서열을 다 밝혀낼 것" 이라고 발표했다.

생명체가 갖고 있는 고유한 유전자의 서열을 읽어내 이를 상품으로 파는 이 회사의 행위는 미국내에서조차 윤리성이나 도덕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란과는 별개로 유전자 사업 규모는 정보통신과 맞먹거나 오히려 능가할 것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이박사는 "유전자는 생명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유전자를 알아내는 것은 곧 생명의 신비를 푸는 것" 이라고 말했다. 컴퓨터도 흉내내지 못하는 인간의 탁월한 두뇌기능, 암까지 격퇴하는 신비한 방어 기작도 유전자라는 열쇠를 통하면 손쉽게 풀 수 있기 때문이다.

◇ 유전자 서열 어디에 활용하나

각종 암이나 혈우병 등 유전적 결함이 원인인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데 활용된다.

개인간 유전적 차이를 십분 고려한 ''주문형 의약품'' 도 개발할 수 있다. 또 환경 중 독성물질을 처리할 수 있는 미생물의 개발 등에도 이용된다.

그런가하면 방사선에 피폭될 경우 위험성과 돌연변이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하는 근거도 마련해 줄 것이다. 또 밀렵꾼의 총알에 묻어있는 DNA를 분석하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사살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이박사는 "21세기에는 ''유전자 벤처'' 가 정보통신 벤처기업을 수적.양적으로 능가할 수 있다" 며 "수십만~수백만 종의 유전자 벤처가 탄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 말했다.

◇ 유전자 연구 어디까지 왔나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미 에너지부와 국립보건원이 지휘하는 인간게놈프로젝트(HGP)가 그것. 공식적으로 90년부터 시작한 이 HGP는 종착역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미 국립보건원은 최근 올 여름께 인간염색체 23쌍 모두에 대한 유전자 서열의 초벌 해독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상세하고 정확도 높은 유전자 서열은 2003년께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 서열을 이루는 염기(유전문자)는 인간의 경우 모두 30억개 가량. 미국은 개당 1달러씩 잡고 30억달러의 예산을 들이고 있다. 30억개의 염기내에 들어있는 개별 기능 유전자는 10만개 정도로 추산된다.

미국 외에 유럽연합.일본.러시아 등 적어도 세계 18개국이 별도로 유전자 서열 해독작업을 진행 중이다. 최근 일본.유럽연합이 21번 염색체의 유전자 서열을 미국에 앞서 밝혀낸 것도 이들 나라가 집중적으로 이 염색체에 매달린 결과다.

미 정부와 별도로 일을 추진하는 셀레라의 경우 해독률에는 앞서가고 있지만 전체 염기배열의 정확도는 다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이 회사가 전체 염기배열 중 의미를 담고 있는 유전자를 중심으로 서열을 읽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 한국은 어떤가

한국과학기술원 김선창 교수는 "유전자 서열 해독은 기술보다는 물량 투입에 크게 의존한다" 며 "국내의 경우 지금까지 인간 염색체에 관한한 연구비 투입과 결과가 전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 말했다.

정부는 뒤늦게 중요성을 인식, 향후 10년동안 매년 1백억원 가량을 투입하기로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이 사업은 생명공학연구소의 주도로 이뤄진다.

이 연구소 복성해 소장은 "출발이 늦은 만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며 "위암.간암 등 한국인에게 흔한 질환과 관련된 유전자를 찾는데 연구력을 모을 작정" 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밖에 산업적 응용이 가능한 미생물 유전자와 개별 유전자의 고부가 가치활용 전략으로 틈새시장을 파고들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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