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트럼프 면전서 ‘한방’ 날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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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출생 의혹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그것도 바로 트럼프를 앞에 앉혀 두고.

 지난달 30일 밤 (현지시간). 워싱턴의 힐튼 호텔에선 연례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이 열렸다. 대통령과 주요 각료·의원·연예인·언론인 등 각계 인사들이 함께하는 큰 행사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초청 연사로 나서 자신의 유머 감각을 뽐내는 게 전통이다. 오바마는 자신이 미국이 아닌 케냐에서 태어나 미국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올해의 연설 주제로 삼았다.

 최근 하와이 병원의 출생기록부를 전격 공개했던 오바마는 “오늘은 출생 비디오를 공개하겠다”고 깜짝 선언을 했다. 참석자들이 모두 긴장한 가운데 준비된 영상이 나왔다. 그러나 오바마의 출생 모습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새끼 사자가 태어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사진)’의 한 장면이었다. 모두 웃었지만 여기에 초대 받아 행사장 중간 테이블에 앉아 있던 트럼프만은 예외였다.

 오바마는 “오늘 밤 여기 트럼프가 있다”며 직접 트럼프를 겨냥했다. “최근 나를 공격한 걸 알지만, 내가 출생기록부를 공개한 데 대해 트럼프보다 더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운을 뗀 뒤 말했다. “왜냐하면 드디어 이제부터 트럼프가 다른 이슈에 집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달 착륙 사실을 속였나, 로스웰(1950년 UFO와 외계인이 발견됐다는 의혹이 많은 뉴멕시코주 도시)에선 정말 무슨 일이 있었나 등등.” 트럼프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계속 펼치고 있다는 점을 비꼰 것이다. 청중석에서 폭소와 박수가 터졌다. 트럼프는 그러나 희미한 미소를 한 번 짓다가 이내 굳은 얼굴이 됐다.

 오바마는 다른 공화당 대선 후보들에 대해서도 유머를 섞어 한마디씩 쏘아붙였다. 행사에 참석한 미셸 바크먼(Michele Bachman·여) 하원의원에게 “대선 출마를 고려하는 것 같은데 좀 이상하다. 내가 듣기로 미셸은 캐나다에서 태어났다던데…”라며 출생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어 “그래요 미셸, 이게 바로 대선을 시작하는 방법이에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팀 폴렌티(Tim Pawlenty) 전 미네소타 주지사에게는 “오바마에 따르면 그의 본명은 팀 호스니 폴렌티”라고 조크를 던졌다. 폴렌티 이름 중간에 최근 민주화 시위로 축출된 이집트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의 이름을 넣은 것. 자신의 본명(버락 ‘후세인’ 오바마) 때문에 이슬람 교도로 오해를 받았던 2008년 대선 상황을 빗댄 것이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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