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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땅 남의 땅 뒤죽박죽, 댁의 땅은 괜찮습니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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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호 03면

지적공사 직원이 정밀 기기로 토지를 측량하고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이 일제 때 작성된 부정확한 지적도를 사용해 분쟁이 잦다. [대한지적공사 제공]

2009년 초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양근리와 공흥리 일대 500필지에서 실시한 측량 결과를 받아 본 대한지적공사 양평지사의 허남선 팀장은 깜짝 놀랐다. 측량한 필지 모두 군청에서 보관 중인 지적도와 위치·모양이 맞지 않은 탓이었다.

양평 등 6곳 지적 재조사 해보니

양근리에 있는 박모(34)씨 집은 측량 결과를 지적도와 비교해 보니 집 절반이 이웃 땅에 지어져 있었다. 별채 역시 40% 가까이 남의 땅을 침범한 상태였다. 박씨의 뒷집 역시 절반이 다른 사람 땅이었다. 허 팀장은 “양근리 일대 지적도가 부실한 건 알았지만 다 틀릴 줄은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낡은 1, 2층짜리 주택이 밀집해 있는 양근리는 지적도가 부정확한 탓에 땅 다툼이 잦아 매매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 ‘버려진’ 동네였다.

지적공사는 양평군과 함께 현재의 땅과 주택 위치에 맞춰 지적경계를 새로 긋는 작업을 벌였다. 서로 비슷한 크기로 상대방 땅을 침범한 경우는 특별한 보상 없이 지주 간 합의하에 경계를 다시 그었다. 땅이 늘어나면 현금을 내놓았고 줄어든 지주는 보상금을 받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지난해 말까지 지적이 재정리되면서 상황이 확 바뀌었다. 그동안 끊겼던 주택과 토지매매도 가능해졌다. 이 동네의 이은계 공인중개사는 “전에는 지적도와 실제 땅이 안 맞아 매매가 안 됐는데 지금은 매매도 이뤄지고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전했다.

본지는 대한지적공사가 2008년부터 전국 20개 지구, 9579필지를 대상으로 벌여온 지적 재조사 시범사업 중 완료된 6개 지구의 사업 결과 자료를 단독 입수했다. 시범사업 대상은 지자체가 추천한 지적도 부정확 지역 중에서 골랐다.

이에 따르면 양평군 양근·공흥리 일대를 비롯해 울산시 남구 본동 지구(461필지), 충북 진천시 화상지구(641필지), 충남 금산군 수당지구(458필지), 전남 영암군 망호지구(606필지), 영광군 옥실지구(566필지) 등 6개 지역 모두 ‘불부합지’였다. 측량 결과와 지적도가 하나도 맞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조사 대상 필지의 지적도상 경계를 모두 재조정해야만 했다. 지적공사의 김영욱 차장은 “사업이 끝나지 않은 나머지 14개 지구도 대부분 조금씩이라도 땅 경계를 새로 그어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2009년 기준으로 전국 3710만 8000필지 중 불부합지역은 14.9%인 553만 6000필지나 된다. 면적 기준으로는 6.1%다. 토지공법학회에 따르면 지적도와 실제 경계가 달라 생기는 분쟁으로 소송비용이 2005년 기준으로 연간 3800억원이나 됐다. 또 향후 10년간 이 액수가 3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경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지주 개인이 부담하는 측량비용도 한 해 평균 900억원에 육박한다. 경계가 겹쳐 있는 바람에 정부가 토지개발을 위해 중복 보상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100년 전 일제에 의해 작성된 종이 지적도를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적공사 박상갑 지적선진화부장은 “그동안 몇 차례 지적도 재작성이 있었지만 일제 때 지적도를 다시 베끼는 정도 수준이어서 정확도에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일부 지역은 6·25전쟁을 거치면서 지적도가 상당 부분 사라져 부정확하게 재작성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인 해결방안이 지적 재조사뿐이라고 말한다. 국토연구원의 사공호상 글로벌개발협력 센터장은 3월 말 열린 ‘지적재조사특별법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지적재조사사업은 사회적 갈등 조정, 지적 선진화 등의 효과가 있으며 선진 지적시스템의 해외수출 효과 등을 합치면 10조원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국토해양부 서명교 국토정보정책관은 “지적 재조사 관련 특별법을 의원입법 형식으로 추진해 6월께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안에는 지적 재조사 사업으로 필지의 면적이 늘어나거나 줄어들 경우 청산할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 등이 담긴다.

당초 국토부는 지난해 지적 재조사를 추진했으나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해 잠정 중단된 바 있다. 10년간 3조5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조사 비용이 걸림돌이었다. 박상갑 부장은 “항공사진 측량 등을 도입하면 전체 사업비를 1조3000억원대로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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