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메이트 고르는 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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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호 10면

직장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내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존경스러운 상사, 유능한 후배, 마음으로 늘 응원해주는 동기. 물론 그들도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사람은 나와 점심을 함께 먹어주는 사람, 이른바 ‘런치메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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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산다. 먹어야 일도 한다. 따지고 들면 일이라는 게 다 먹자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직장에 다니는 사람에게 그날 가장 중요한 행사는 언제나 점심식사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항상 런치메이트다.

런치메이트 없이 혼자 밥 먹으러 오는 손님을 반기는 식당은 드물다. 혼자라도 한두 번쯤은 꿋꿋하게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날마다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한다면 방금 지은 밥이라도 목이 멜 것이다.

그가 누구인지는 함께 점심을 먹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그의 세계관과 정치적 성향과 인간에 대한 태도와 업무 능력을 알려주는 건 그의 런치메이트다. 그러므로 아무나 하고 점심을 먹을 수는 없다. 유연하고 사교적인 사람도 런치메이트를 고를 때는 까다로워지고 예민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내가 오랜 직장생활에서 겨우 깨달은 ‘런치메이트 고르는 법’이란 이렇다. 일단 외근이 잦거나 점심 약속이 많은 사람은 런치메이트로는 최악이다. 날마다 물어봐야 하는데 이럴바에야 차라리 혼자 먹는 게 속 편하다.

사장이나 임원처럼 직위가 너무 높은 사람도 좋지 않다. 아무래도 자리가 불편해 식사의 즐거움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식성이 다른 사람도 피한다. 나는 채식을 주로 하는데 상대가 고기만 찾는 사람이라면 고기에 따라 나온 상추만 뜯어먹어야 할지 모른다. 관심사가 다른 사람도 건너뛴다. 점심시간 한 시간이 일생보다 더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우유부단한 사람도 곤란하다. 이미 식사를 마친 동료들이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돌아올 때까지 식당이나 메뉴를 정하지 못하고 서 있어야 할지 모른다.

대개 같은 팀이나 부서 사람 가운데 런치메이트를 구하는 데 그래서는 찾기 어렵다. 어느 결혼정보회사 광고처럼 인연은 꽤 멀리 있을지도 모르니까. 시각을 넓혀 다른 팀이나 부서 사람 중에서 찾아본다. 만일 운이 좋다면 당신은 그런 사람을 만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도 과연 당신을 런치메이트로 생각할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한동안 함께 밥 먹자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믿기 어렵다. 워낙 오래된 시절의 일이라. 요즘은 일하다 고개를 들어보면 다들 점심 식사하러 나가고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이제 내게도 때가 온 것이다. ‘런치메이트를 고르는 법’ 따위는 11층 창 밖으로 내던져 버려야 할 때가.

점심 약속이 많은 사람은 인기가 많은 사람이다. 직위가 높다면 뭔가 배울 게 있지 않겠는가. 식성이 다른 사람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점심시간에 밥 먹는 것 말고 무슨 별다른 관심사가 있겠는가.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면 내가 결정하면 될 것이다.

사무실에는 오직 한 사람 경영지원팀 김 과장이 남아 있다. 나는 김 과장에게 다가간다. “점심 같이 드실래요?” 김 과장도 나를 자신의 런치메이트로 여긴 걸까?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전 도시락 싸왔어요.”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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