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j Focus] ‘신촌 자취생’ 별명의 스웨덴 가수, 라세 린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이분 아직 신촌에 사나요?” 한때 인터넷에 이런 질문이 더러 올라왔었다. 어떤 누리꾼은 ‘홍대’에서 만난 그에게 받은 사인을 자랑하기도 했다. 힌트를 보태자. 2006년 한국 시트콤 ‘소울메이트’에 삽입된 곡 ‘커먼 스루(C’mon through)’. 이쯤 되면 튀어나올 법한 이름, 스웨덴의 싱어송라이터 라세 린드(Lasse Lindh·37)다. 2006년 첫 콘서트 이후 내한공연이 잦아지더니 이 남자, 급기야 한국에 눌러앉았더랬다. 그에게 ‘신촌 자취생’이란 별명이 붙은 건 그래서다. 지난해 돌연 자취생활을 접고 스웨덴으로 돌아갔던 그가 다시 왔다. 새로운 음악에 수필집까지 들고서. 잔뜩 헝클어뜨린 머리에 때 묻은 흰 스니커즈조차 멋진 그가 성큼, 홍대 앞 한 카페로 걸어 들어왔다.

글=김지은 뉴스위크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홍대 앞에 얼마 만에 왔나요?

 “약 5개월 만인가요? 홍대 앞은 항상 그리워서 한국에 올 때마다 찾게 돼요.”

●이곳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신촌, 홍대, 이대(린드는 이 단어들을 한국어로 발음했다) 일대를 좋아해요. 멋진 카페나 바들이 많이 있어요. 주변에 대학들이 있어서인지 생동적인 느낌도 들고요. 특히 홍대 앞에선 심장 박동(pulse)이 느껴져요. 힘찬 에너지가 있죠. 모든 것이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는 느낌이에요. 강남하고는 다르죠. 그런 이곳이 좋아요.”

●강남은 어땠는데요?

 “스톡홀름은 높은 건물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어서 깔끔하고 잘 정돈된 느낌이죠. 강남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내겐 홍대 앞 같은 곳이 더 편안해요. 뉴욕에 가더라도 도심보다는 뒷동네에 가는 걸 더 즐겨요.”

●이곳에서 집을 구해 산 적도 있지요?

 “네. 2009년 10월부터 1년쯤 살았어요. 이곳에 사는 한국 친구들이 있었거든요. 콘서트 때문에 한국에 왔을 때도 항상 홍대 앞에 들러서 여가를 보내거나 (클럽에서) 파티를 즐겼기 때문에 친숙했어요. 이곳에 살기로 마음먹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한국에선 무얼 하며 지냈나요?

 “종종 나를 초청하는 공연에 참여했어요. 그랜드민트 페스티벌, 방송사의 TV 음악 프로그램 등에 출연했고 전국 투어 콘서트도 했어요. 서울에 있을 때는 주로 노트북을 갖고 다니면서 글을 쓰거나 친구들과 파티를 즐겼죠. 아, 여행도 많이 다녔어요. 그중 제주와 부산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곳이에요.”

●한국에 살 때 ‘신촌 자취생’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사실을 아나요?

 “‘신촌 드웰러(Shinchon dweller·신촌 거주자)’요(웃음)? 알아요. 좋은 의미로 붙여진 거겠죠? 그렇다면 ‘오케이’예요.”

●당신이 한국을 무척 좋아해서 귀화할 거란 소문도 있었지요.

 “오! 그건 처음 들어봐요. 재미있네요. 나를 둘러싼 다른 뜬소문은 많이 들었어요. 결혼했다거나(그는 미혼이다) 술에 취해서 무대에 오른다거나 하는 얘기들요. 하지만 모두 완전히 잘못됐어요.”

●홍대 앞에서 음악적 영감을 받기도 했나요?

 “그럼요. 그래서 만든 곡도 35~40곡 돼요. 맥박이 뛰는 듯한 생동감이 비트(박자)로 느껴지고(그는 ‘탁탁’ 손바닥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것이 음악을 만드는 영감이 됐죠.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 이유 중 하나도 그 곡들을 작업하기 위해서예요. 한국에서 만든 음악들이니 한국에서 녹음하고 싶었어요. 피아노나 기타 반주를 이용한 어쿠스틱 음반이 될 거예요.”

라세 린드의 앨범들.

●새로운 음반이 나오나 보군요. 책도 낼 계획이라면서요?

 “네. 5월 말께 나올 거예요. 제목을 『라세 린드의 할로 서울』이라고 지었어요. 책과 음반을 묶어서 내려고 해요. 신곡 3~4곡이 들어간 EP(Extended Play·싱글보다는 곡이 많지만 정규앨범보다는 적은 앨범)지요. 내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면 글에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책에는 여행기도 있고, 내가 경험한 기이한 일들(weird things)도 담길 겁니다.”

●기이한 일?

 “만취해서 거리에 누워 자는 한국인, 비가 오면 항상 우산을 쓰는 모습, 신(神)보다 더 빨리 집을 고치는 한국인(스웨덴에서는 벽지를 새로 바르거나 창문을 보수하는 데 적어도 2주가 걸리는데 한국에선 5시간 만에 끝나더라며 그는 놀라워했다), 식사 중간에 높은 손님이 오면 다 일어서서 인사하는 모습 등…. 스웨덴과는 참 달라요. 아마 한국 사람들도 스웨덴에서 살아보면 역시 그렇게 느끼는 일이 많겠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우리 모두가 신기하고 이상한 사람들일 테니까요. 당신에게는 모든 일이 일상(common)이겠지만 내게는 참 흥미로웠어요.”

●당신의 첫 번째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는 거군요.

 “그러게요(웃음). 만약 10년 전에 누군가가 ‘한국에서 책을 낼 계획이 있느냐’라고 물어봤다면 무척 어이없어 했겠지요.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는 다음 달 14~15일 서울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리는 ‘그린플러그드 서울 2011’에 참여한다. 국내외 뮤지션 110개 팀이 무대에 오르는 ‘친환경 콘서트’다. 린드는 15일에 공연한다.

●그 행사의 취지도 알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난 10년째 ‘그린피스’ 회원이에요. 차 대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다니지요. 나 스스로 꽤 친환경적인(green)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스웨덴에서도 철저히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고요. 환경에 나쁜 일을 하는 거라곤 비행기를 타는 것? 하지만 그건 여행을 좋아해서 어쩔 수 없네요(웃음).”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음악은 내가 유일하게 관심을 쏟는 대상이었어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예를 들어 목수나 은행원 같은 다른 꿈을 꿔본 적이 없어요. 음악만이 유일한 관심사였어요. 음악을 그만둘 생각을 해본 적도 없죠. 부모님도 이걸 알고 지지해 주셨어요.”

●도대체 어떤 의미이기에요?

 “사람들이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또 내 이름을 외치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를 때 느끼는 감정은 이성과의 사랑만큼이나 강렬해요. 게다가 그런 사랑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받는다면 어떨 것 같아요?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국내에서 인기를 끈 곡 ‘커먼 스루’ 얘기를 안 할 수 없었다. 피아노 반주에 “come dig right into my heart(내 마음을 파헤치세요)”라고 애절하게 부르는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많은 이가 매료됐다. 이 곡이 사랑받게 된 건 2006년 방영된 시트콤 ‘소울메이트’ 덕분이다. 엇갈리기만 하던 남녀 주인공이 서로가 영혼의 동반자임을 깨닫는 순간마다 배경음악으로 나왔다.

●‘커먼 스루’ 가사와 시트콤 내용이 잘 맞아떨어져요.

 “이 곡의 가사는 단순해 보이지만 꽤 은유적이에요. ‘당신과 함께 있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당신이 내게 오려거든 내 마음속으로 완전히 들어오라’는 얘기지요.”

●음악 중에 사랑에 관한 곡이 많던데요.

 “인생에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랑은 남녀 간의 감정일 수도 있지만, 친구나 가족 사이에도 존재하잖아요? 어디에나 있지요. 모든 사람이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고요.”

●다시 한국에 머물 계획이 있나요?

 “그러고 싶어요.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무엇보다 책이 잘 되나 봐서요(웃음)!”

j 칵테일 >> “한국서도 자전거로 다녀요”

린드는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다. “스웨덴에 있는 드라마학교에서 4년간 공부했어요. 1년에 2명꼴로 입학을 허가할 정도로 들어가기 힘든 학교지요.” 그가 쓴 시나리오가 드라마로 만들어져 국영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크고 오래된 관심은 역시 노래다. 그는 열다섯 살 때 첫 밴드를 결성해 활동했다. “가장 친한 친구들과 만든 4인조 밴드였죠. 너무 오래돼 밴드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요. 그때 난 기타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고 작곡도 했어요. 심지어 투어 공연도 했죠.”

 그가 관심이 없어 보이는 건 두 가지다. 첫째는 운전. “운전면허도 없어요.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한국에서도 자전거로 다녀요. 당신도 아마 면허가 없는 게 더 나을걸요. 그래야 당신은 밤새 파티를 즐기고 운전은 다른 사람이 하게 될 테니까요.”(웃음) 또 하나는 결혼이다. “내 친구들은 아내, 자녀, 집이 있지만 항상 일을 해야 해요. 그래서 피곤해하죠. 하지만 나는 항상 즐기며 살아요. 굉장한 삶이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