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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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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연수
소방방재청장

지구촌을 놀라게 한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은 일순간에 2만 명이 넘는 귀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아직도 많은 실종자 현황이 파악되지 않은 가운데 계속되는 여진과 원전 방사능 누출 등으로 희생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복구작업은 언제나 제대로 이루어질지 한 치 앞을 전망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가마이시(釜石) 초·중학교의 기적이 화제가 되고 있다. 대형 지진과 지진해일이 조그만 항구도시를 덮쳐 1000여 명의 주민이 희생되었지만, 3000명의 학생들은 대부분 무사했기 때문이다. 이들 학교에서는 2004년부터 지진, 지진해일 발생을 가상한 행동요령을 반복해 교육시켜 왔다고 한다. 덕분에 실제 상황이 발생하자 중학생들은 평소 훈련받은 대로 인근 초등학교로 달려가 동생들의 손을 잡고 침착하고 신속하게 지정된 곳으로 대피할 수 있었다. 인근 후다이 마을에도 14m의 지진해일이 덮쳤지만 15.5m의 방조제 덕분에 한 명의 희생자도 없었다. 1933년과 60년 대형 지진해일을 경험했던 이 마을 촌장의 깨어 있는 방재의식과 고집스러운 집념이 마을주민을 살린 것이다.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따라서 재난대응은 직접 당하게 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속하고 침착한 판단과 대응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소방관, 경찰, 공무원 등 공공조직이 재난현장에 도착하는 동안 대부분의 상황은 종료되어 거의 사후처리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난현장에서의 긴급사태 대응능력 강화를 통해 피해를 줄이려는 시도가 ‘방재훈련’의 핵심이다. 일반 시민, 주부, 회사원, 공무원, 학생, 소방관 등 사회 구성원 모두가 국민 방재 역량 강화의 대상이다. 국민 방재 역량을 키우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반복된 훈련과 지속적인 교육뿐이다. 유럽·일본 등 방재 선진국에서 유치원생 때부터 수없이 반복되는 방재훈련과 안전교육을 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방재를 정부, 지자체나 소방서 등 관공서만의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실을 거울삼아 정부는 5월 2일부터 4일까지 풍수해, 지진 및 지진해일, 화재, 테러 등 각종 재난상황을 가상한 종합훈련을 실시한다. 훈련 첫날에는 극한 기상 대비 재해훈련을, 둘째 날에는 테러·화재 대응태세 훈련을 실시한다. 마지막 날에는 지진에 대비한 주민대피, 차량통제 훈련을 하고 동해안 지역에선 지진해일 대피훈련을 한다. 재난이 다변화·광역화·거대화되면서 효과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국민의 자기책임이 강조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과 국민의 자기책임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박연수 소방방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