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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국관리사무소… 한 장소 두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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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 민족… 갈리는 국적
12일 서울 목동 출입국관리사무소 국적업무출장소 앞. 한국 국적을 회복하려는 중국동포엄마와 자식의 국적을 포기하려는 엄마를 각각 따라온 두 아이가 창구 앞에서 놀고 있다. 박종근 기자

12일 오후 서울 목동 출입국관리사무소에는 "국적을 버리게 해달라"는 한국인들과 "한국 국적을 얻고 싶다"는 해외 동포들이 뒤엉켜 있었다. 말끔한 차림의 한국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새 국적법을 성토하며 '대한민국'을 거침없이 깎아내렸다. 반면 남루한 점퍼와 모자를 쓴 중국 동포들은 '국적 회복 허가 신청서'를 작성하며 한시라도 빨리 대한민국 국적을 얻기를 기다렸다.

중국 지린(吉林)성 출신 김모(51)씨는 "뿌리를 찾기 위해 귀국하려는 독립 투사들의 자손이 중국에만 수만 명"이라며 "자신이 태어난 조국을 어떻게 저리 쉽게 버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날도 출입국관리사무소에는 긴 행렬이 이어졌다. 절반은 자식의 한국 국적을 포기하려는 부모들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국적을 취득하거나 귀화하려는 해외 동포와 동남아시아인들이었다.

국적 포기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부분의 한국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일부는 "정당하게 세금 내는 국민을 언론이 매국노로 몰아세운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냐"며 취재진의 멱살을 잡기도 했다.

미국에서 상사주재원으로 일하다 아들을 낳았다는 한 40대 남성은 "교육비에 허리가 휘고, 사회보장제도가 부실하고, 미래가 안 보이는 사회에서 불가피하게 결정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하루만 700~800여 명이 이곳을 찾아 141명이 국적을 포기했다. 하루 평균 국적을 회복하는 해외 동포나 귀화 외국인은 전국적으로 20여 명이며, 지난 한 해 동안 모두 8100여 명에 달했다.

?원정출산 부모들 전전 긍긍='정보나눔이'등 해외에서 자녀를 출산한 부모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는 새로운 국적법 시행을 반대하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는 '평촌맘'은 "한국 교육의 실태를 보고서도 어렵게 얻은 선진 교육의 기회를 포기하겠느냐"며 "동성애가 난무하는 군대에 아들을 보낼 마음이 없다"고 항변했다.

국적 포기의 득실을 따지는 글도 많았다. '냥이 엄마'는 "국적을 포기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무료로 학교를 다니고 의료보험 적용을 받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며 "새 국적법의 시행이 앞당겨질 수 있으니 하루빨리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외 공관도 몸살=유학생들과 주재원들이 현지 한국 공관에 직접 국적 포기를 신청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국적을 포기한 1418명 중 절반 이상인 800여 명은 해외 공관에서 국적 포기를 신청했다. 실제로 주미 대사관 등에는 하루에 수십 통씩 국적 포기 절차를 묻는 전화가 몰려 담당 부서가 몸살을 앓고 있다.

*** 법무부, 병역 피하려 국적 포기 땐 회복 불허할 방침

한편 법무부는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이 급증하는 것과 관련, 병역 기피 목적의 국적 포기자에 대해서는 외국인 체류 자격 심사를 철저히 하고 국적 회복을 허가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12일 밝혔다.

손해용.정강현 기자 <hysohn@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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