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golf&] “여든아홉에 홀인원 했어, 공 집어들고 만세삼창 했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7면

89세의 나이에 최고령 홀인원을 기록한 관정 이종환 회장이 골프 클럽을 쥐고 포즈를 취했다. [JNA 제공]

화창한 토요일 오후였다. 머리가 허연 노신사는 힘차게 클럽을 휘둘렀다. 그린에 사뿐히 내려앉은 뒤 떼굴떼굴 구르던 골프공은 갑자기 일행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 저거 홀에 딱 붙었을 것 같은데요.”

“글쎄 말야. 버디 찬스입니다.” 그러나 그린에 올라선 노신사 일행은 흰색 골프공을 찾지 못했다.

“거참 이상하네, 아까 분명히 공이 홀 쪽으로 흘러갔는데….” 그때 허리를 굽히고 홀 주변을 살피던 캐디가 큰소리로 외쳤다.

“세상에나! 홀인원이에요. 홀인원!”

2011년 4월 2일 제주도 크라운 골프장 서코스 7번홀(파3)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국내 최고령 홀인원 기록이 수립된 순간이었다.

최고령 홀인원의 주인공은 1923년생인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회장이다.최고령 홀인원 기록을 세운 소감을 듣기 위해 지난 20일 서울 중구 삼영화학 사무실을 찾아갔다. 이 회장은 지난 2002년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을 설립한 뒤 사재 6500억원을 출연한 자선사업가로 이름난 인물이다. 일단 홀인원 이야기부터 꺼냈다.

-1923년생이면 만 88세를 넘으셨는데요. 최고령 홀인원 기록을 세우신 기분이 어떻습니까.

“허허, 별일도 아닌데 여기까지 찾아오시고…. 머, 기분은 좋습디다. 내가 골프를 시작한 게 1959년이니까 구력이 52년을 넘은 셈인데 그동안 ‘호루인원(홀인원)’을 한 번도 못 해본기라. 내가 이 나이에 못해본 거 별로 없지만 골프는 마음대로 안 되잖아. ‘홀인원도 안 되나 보다’ 하고 포기했었는데 막상 하고 보니 그 기분이 말로 표현 못해. 속이 다 시원하데. 그래서 갑자기 만세삼창을 했지. 홀인원 한 공을 집어 들고 ‘만세, 만세, 만세’ 하고 말야. 이제 더 이상 소원이 없어요.”

-호적에는 1924년생으로 돼 있는데 정확한 연세가 어떻게 되나요.

“정확한 생년월일은 1923년 4월10일생인데 호적엔 24년생으로 돼 있지요. 계해(癸亥)생이란 말이지. 옛날엔 호적이 실제 생년월일과 다른 경우가 무척 많았잖아요. 그러니깐 내 나이는 올해 여든아홉이 맞지.”

이 회장은 그날 123m(약 135야드) 거리의 파3홀에서 5번 우드를 잡고 홀인원을 했다. 대한골프협회는 그동안 국내 최고령 홀인원 기록은 따로 집계하지 않았지만 이 회장의 기록은 국내 최고령 홀인원 기록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미국에선 4년 전 102세 할머니가 91m짜리 파3홀에서 홀인원을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국내에선 80대 노인이 홀인원을 했다는 기록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사진은 2008년 KLPGA투어 크라운CC 여자오픈에서 시구를 하고 있는 이 회장. [JNA 제공]

-구력이 50년을 넘었는데 홀인원이 처음이라니 그것도 이상하군요.

“홀인원과는 인연이 없었지. 이글은 20여 년 전 경남 진해에서 한 번 해봤는데 홀인원은 안 되더라 말이지요. 내가 골프 실력이 별로인 탓도 있고…. 한창때는 80대 중반도 쳤는데 일하느라 너무 바빠서 골프를 자주 칠 여유도 없고, 그러니까 골프 실력도 참 안 늘데.”

-적지 않은 연세인데 요즘도 골프를 자주 칩니까.

“아니, 그렇지 않아요. 기껏해야 1년에 10번도 안 될걸. 체력적으론 아직 큰 문제가 없는데 일하느라 바빠서 골프 칠 시간이 많지 않더란 말이지요. 휴가 때 몰아서 몇 번 치고, 가끔 한 번씩 치는 거지.”

그와 함께 동반 라운드했던 강덕기(75) 관정교육재단 이사장(전 서울시 부시장)이 옆에서 거들었다.

“회장님은 요즘도 건강하셔서 라운드 할 때 카트를 타는 법이 없어요.홀인원 하시던 날도 카트를 마다하고 내내 걸어다니셨지. 회장님을 따라다니려면 나이가 젊은 우리가 오히려 힘들어요. 참, 대단한 체력이라니까.”

-학창 시절 운동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운동을 한 게 골프를 하는 데 도움이 되던가요.

“학교 다닐 때 유도와 검도를 좀 했는데 골프는 참 마음대로 안 돼. 기껏해서 잘 쳐봐야 15개나 16개고, 그 고비를 못 넘겼어. 골프엔 영 소질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지.”

-1959년에 골프를 시작했다는데 50년대에 어떻게 골프를 배울 생각을 했습니까.

“건강에 좋다고 해서 골프채를 처음 잡았지. 사교를 위해서도 필요할 것 같았고…. 미제 클럽을 어떻게 하나 구해서 서울 충무로 연습장에서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엔 아마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골프 연습장이었을걸. 골프를 배운 뒤로 서울 군자동 골프장에 자주 드나들었지.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골프장이었을걸, 아마. 지프차를 타고 1~2달에 한 번씩 골프장에 갔어요. 나중엔 안양 골프장과 미8군 골프장도 종종 갔었지. 그때 그린피가 얼마였는지 기억도 안 나네. 해간 그 때도 골프 치려면 돈이 꽤 많이 들었어요.”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따로 있나요.

“비결은 무슨…. 그저 욕심 버리고 바쁘게 사는 거지.”

무뚝뚝한 그의 대답을 듣다 못한 강덕기 이사장이 부연설명을 했다. 

 “회장님은 기억력이 비상해요. 아직도 300개가 넘는 전화번호를 다 외우고 다니시죠.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카트도 안 타시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와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행기를 탈 때 비즈니스 석을 마다하시고 이코노미만 타고 다녔어요. 타고난 체력에다 워낙 바쁘니깐 늙으실 틈도 없는 것 같아요.”

이종환 회장은 2002년 장학사업 계획을 발표한 뒤 이제까지 장학재단에 6500억원이 넘는 사재를 출연했다. 평생 일군 재산의 95%를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이 덕분에 지금까지 6100여 명의 장학생이 714억원의 장학금을 지급받았다. 플라스틱 사업을 통해 번 돈을 장학재단에 내놓자 당시 주변에선 “구두쇠가 천사가 됐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장학사업을 위해 큰돈을 내놓은 이유를 묻자 이 회장은 측근을 통해 책 한 권을 건네줬다. 책 제목은 『정도(正道)』. 2008년 출간한 자서전이었다. 자서전을 통해 밝힌 그의 꿈은 관정 장학생 가운데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것이다. 책 머리에 이런 문구가 눈에 띄었다.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못했어도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련다’. 

정제원 기자

이종환 회장  1923년 경남 의령 출생. 마산고를 졸업하고 44년 일본 메이지대 경상학과를 2년 수료했다. 58년엔 삼영화학공업주식회사를 창업했고, 현재는 1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삼영그룹으로 발전시켰다. 2002년 관정교육재단을 설립한 뒤 이제까지 6500억원이 넘는 돈을 출연해 인재 육성의 꿈을 키우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