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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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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시인 김지하가 “밥이 하늘이다”고 외쳤지만, 중국의 요(堯)임금도 밥이 정치의 요체임을 일찌감치 알았다. 백성들이 잘 먹고 배를 두드리는 모습으로 선정(善政)을 확인했던 것이다. 태평성대를 뜻하는 함포고복(含哺鼓腹)의 유래다. 그런 요 임금도 오차(誤差) 때문에 고심했다. 1년의 길이와 월력(月曆)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내 1년을 366일로 계산해 354일인 음력에 윤달을 넣어 해결했다. 요 임금 최대의 치적으로 꼽힌다. 물론 여기에도 오차가 있어 한(漢) 무제(武帝)가 19년에 7번 윤달을 두는 태음력을 완성하게 된다.

 태양력도 오차를 피할 수 없다. 4년에 한 번 윤년을 둔 율리우스력(曆)도, 여기에 400년 동안 세 번의 윤년을 평년으로 한 그레고리력도 완전하지 않다. 1년 길이가 회귀년(回歸年)으론 365.2422일, 항성년(恒星年)으론 365.2564일이다. 이 또한 중력의 영향으로 조금씩 느려진다. 보정이 필요한 이유다. 본디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에는 오차가 없지만, 이를 재는 인간의 한계가 오차를 만드는 것인가. 마치 디지털이 ‘0’과 ‘1’로 아무리 미분(微分)해도 아날로그에 접할 수 없듯이.

 오차의 법칙을 발견한 이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한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이다. ‘근삿값’에 대해 ‘참값’이 좌우대칭으로 분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가 태엽보다 정밀한 진자시계를 발명한 것도 역법(曆法)에 밝았기 때문인데, 하늘을 살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오차’를 발견한 셈이랄까.

 이런 오차가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여론조사에서 ‘95% 신뢰도에 오차범위 ±3.4%’ 식이다. 전수(全數)가 아니라 일정한 표본을 추출하다 보니 오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발표된 지지율은 ‘근삿값’으로, ‘참값’은 오차범위 안 어딘가에 있다. 따라서 ‘오차범위 내 혼전’이란 말은 ‘지지율 수치가 의미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후보들은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

 투표를 마친 표심(票心)도 진정한 민심(民心)과는 오차가 있다. 유권자 모두가 투표하지 않는 한 말이다. 투표율이 낮으면 그만큼 오차범위도 커진다. 투표로 승부는 났지만, 진정 민심을 대변하느냐는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민심이 ‘하늘의 뜻’이 되려면 오차범위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표본을 늘려야 하는데 바로 투표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오늘 전국 38곳에서 재·보선이 치러진다. 

박종권 선임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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