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서 희망 쏘아올린 그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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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국내 유일의 여성장애인휠체어농구팀 ‘레드폭스’ 선수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맨 앞에 있는 선수가 세 번의 척추수술을 이겨낸 포워드 윤은미(48)씨, 그 왼쪽이 주장 박은영(48)씨, 맨 뒷줄에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김현숙(48) 감독이다. 올해 목표는 장애인체전 출전과 올림픽 예선 통과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지난 15일 오후 경기도 고양의 장애인체육관. 국내 하나뿐인 여성장애인휠체어농구단 ‘레드폭스’가 연습경기를 하고 있었다. 주장 박은영(48)씨가 공을 몰고 하프라인을 넘어오자 수비가 막아섰다. 곧바로 박씨와 같은 팀 선수가 수비수의 오른쪽을 막았고 박씨는 그 틈으로 2점 슛을 성공시켰다. “나이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장애인이라고, 여자라고 농구하지 말란 법 있나요. 농구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마약 같아요.”

 박씨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레드폭스의 선수는 총 10명. 29세의 ‘에이스’ 한인경씨부터 환갑을 넘긴 61세 ‘맏언니’ 윤유정씨까지 모두 소아마비나 근위축증, 경추마비 등 크고 작은 장애를 갖고 있다.

 휠체어 농구는 팔 힘만으로 휠체어를 몰고 슛을 던져야 하기 때문에 여성에겐 꽤 어려운 스포츠다. 10명의 선수 중 4.2m 거리의 자유투를 성공시킬 수 있는 선수는 2명 정도다. 3점 슛은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아직 없다. 그러나 실업팀 선수 출신으로 이들의 요청으로 감독을 맡고 있는 김현숙(48)씨는 “선수들의 열정만은 NBA급”이라며 웃었다.

 농구단이 창단된 건 2008년. 선수 모집이 가장 어려웠다. 여성 장애인들은 “너무 과격한 운동”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주장 박씨는 재활병원을 찾아다니며 입단을 권했다. 중간에 포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재활에 농구만 한 운동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배드민턴·탁구 등 다른 운동과 달리 농구는 온몸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워드인 윤은미(48)씨는 소아마비로 척추가 굽어 세 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혼자 힘으로는 휠체어를 타지 못할 만큼 몸이 약했다. 농구를 시작한 지 1년, 윤씨는 이제 혼자서 장을 보러 다닐 만큼 건강해졌다. 윤씨는 “농구를 시작한 뒤로 대인관계가 넓어지고 자신감까지 생겼다”고 했다.

 선수들에게 목표를 묻자 “당연히 장애인올림픽 금메달이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꿈은 크지만 현실은 아직 어렵다. 상대팀이 없어 지난해 전국 장애인체전 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올해도 불투명하다. 훈련이 끝나면 거창한 회식 대신 도시락을 나눠 먹는다. 경기용 휠체어가 없어 경기 때면 남성팀의 휠체어를 빌려 탄다. 주장 박씨는 “솔직히 우리 때는 힘들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가 디딤돌이 돼서 언젠가는 후배들이 해내겠죠”라고 말했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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