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주신 책에서 희망 봤어요” 교도소에서 보내온 편지 한 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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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난 이베이옥션 임기현 과장이 교도소 수감자로부터 받은 편지와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이베이옥션 제공]

이베이옥션 판매자개발팀 임기현(33) 과장은 지난해 10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발신지는 영등포교도소, 발신인은 ‘김창렬(가명)’로 돼 있었다.

 “3년째 교도소에 수감 중인 죄인입니다. 출소 후 딸과 아내를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습니다. 우연히 교도소 안에서 온라인 창업 책자를 접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지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임씨는 김씨가 어떤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김씨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딸과 아내를 위해서…”라는 구절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임씨의 아내도 임신 8개월째로 곧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며칠 후 임씨는 답장과 함께 옥션·G마켓 판매요령에 대한 안내책자와 해외판매 관련 서적, 온라인 창업 안내 도서 세 권 등을 자비로 사서 보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임씨는 이베이옥션 박주만 대표로부터 “월요일 오전 임원회의 때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무슨 실수라도 했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던 임씨는 긴장한 마음으로 회의실에 들어갔다. 문을 닫고 박 대표에게 인사하려고 뒤돌아서는 순간, 임씨는 박 대표 손에 들려 있는 편지봉투에 ‘김창렬’이라는 이름 석 자가 적힌 것을 발견했다. 박 대표는 전 임원들 앞에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언제나 높게만 보였던 담장이 희망을 그릴 수 있는 캔버스로 보이게 된 것은 이베이옥션 덕분입니다. 임 과장이 보내준 책은 책이 아니라 새 삶에 대한 희망이었습니다….”

 박 대표는 “김씨는 기념품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서 교도소에 수감 중인데 임 과장이 보내준 책을 받고 삶의 희망을 찾았다”며 “김씨 아버지는 간암, 어머니는 심장병, 아내는 갑상선암으로 투병 중이라 누군가 책 한 권 사서 보내줄 수 없는 형편인데 임 과장의 도움을 받고 고마워서 나에게 대신 칭찬해 달라며 감사 편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날 임씨에게 표창장과 격려금을 전달했다.

 임 과장은 기자에게 “딸과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김씨가 출소 후 가족들을 책임지기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고 하는 말이 마음을 움직였다”며 “자식과 아내를 향한 아빠의 사랑이 느껴져서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큰일을 한 것도 아닌데 주변에서 너무 칭찬을 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김씨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봤다고 하니 출소 후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임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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