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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모두 불만 ‘복수노조’ 보완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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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오는 7월 1일부터 기업 내에 복수의 노동조합을 허용하는, 이른바 복수노조 시대가 열린다.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법령은 일찍이 1997년에 만들어졌으나 노사 당사자의 입장이 워낙 첨예하게 대립해 14년 동안 유예돼 오다가 마침내 시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행을 두 달 남짓 남겨둔 아직까지 노사 양측 모두 여전히 이 제도에 대해 불만과 불안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노측에서는 새 제도가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제약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사측은 노조 난립으로 인한 생산현장의 혼란을 우려한다. 현장의 노사는 솔직히 법이 다시 개정되든지 시행이 유보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일단 7월부터 시행하고 문제점이 드러나면 차후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무려 14년이나 시행이 미뤄졌던 것을 생각하면 일단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노사 모두가 걱정하는 불확실성을 그대로 놔둔 채 시행에만 매달리고 문제점은 나중에 고치자는 태도는 좀 그렇다. 글로벌 시장에서 분초를 다투며 경쟁하는 경제현실에서 보면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더욱이 총선과 대선 등 정치 스케줄에 비춰볼 때, 당장 시행할 경우 그 뒤 최소한 2년 이상은 문제점을 보완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 모두 시행 전에 염려되는 문제점을 최대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수노조의 난립에 따른 혼란과 갈등이다. 본래 복수노조의 취지는 근로자의 선택권을 넓히자는 것이다. 그래서 근로자의 선택을 받은 노조가 대표성을 갖고 사측과 교섭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체근로자의 대표성을 획득하기 위한 노조보다는 소수가 자기네 이익만을 위한 노조를 만드는 경우가 태반이다. 몇 해 전 복수노조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갔을 때 피아트 자동차에는 시칠리아 섬 출신으로만 이뤄진 노조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도 이 같은 ‘향우회 노조’를 막을 방법이 없다. 또 성과주의 경영에 반대하는 소수 근로자층을 중심으로 ‘구조조정 저지형 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해 노사갈등뿐 아니라 근로자 간의 노노갈등도 심화시킬 것이다.

 혹자는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절차가 있으므로 소수노조 난립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 제도가 가진 두 개의 큰 구멍으로 인해 교섭창구 단일화는 무력화될지도 모른다. 첫째 구멍은 사용자가 동의하면 별도 교섭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회사 내 지지가 약한 소수노조일수록 산별노조 등 외부의 힘을 빌려 별도 교섭을 위한 강경투쟁을 벌일 것이다. 이로 인해 단체교섭 구조는 혼란해질 것이며 노노갈등 또한 심해질 것이다. 둘째 구멍은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것이다. 현행법은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 형태, 교섭 관행 등을 고려해’ 기업 전체가 아니라 각개 사업장 등으로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도록 터놓았는데, 이 조건들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소수노조일수록 교섭단위 분리를 강하게 요청할 것이다.

 뻔히 보이는 문제점을 놔둔 채 시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노조 설립을 위한 최소 규모 요건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라도 최소한 종업원의 10% 이상 규모를 가진 노조로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교섭단위 분리의 요건도 엄격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 분리 신청이 남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일 이 같은 보완이 단시간에 어렵다면, 문제점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100인 이하 기업부터 우선 시행하고, 2~3년 후 보완해 큰 규모 기업으로 확대하는 것이 안전하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