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경영권 상속도 숨통 터줘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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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호 02면

경제학에 ‘니르바나 접근법’이란 말이 있다. 정부 정책을 만들 때 금기시해야 할 것 중 하나다. 니르바나(Nirvana)는 우리 말로 열반이다. 보통 사람에겐 가당치 않은 지고지순의 상태다. 그런데도 정부는 종종 ‘열반의 함정’에 빠진다. 이상적인 기준과 규범을 만든 후 지키라고 강요한다. 이런 정책은 대개 실패한다.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부작용과 범법자를 양산한다. 성매매금지법이 그렇다. 시행 6년이 지났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풍선 효과 때문에 범법자와 유사 성매매만 늘었다. 법과 정부에 대한 신뢰도 손상됐다. 그래서 퇴로 얘기가 나온다. 억누른다고 인간의 본능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자각이다. 성매매금지법의 퇴로는 공창제(公娼制)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요즘 정부와 정치권, 재계가 날카롭게 대립 중인 상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쟁점은 ‘이사의 자기거래 승인 대상 확대’와 ‘회사 기회의 유용 금지’다. 이름도 요상한 이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했다. 재벌그룹 오너는 친·인척과 계열사에 일감을 함부로 줄 수 없다는 의미다. 일감을 주겠다면 이사회를 열어 3분의 2 이상의 이사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 일감이 나중에 대박이 나서 결과적으로 일감을 준 회사에 손실이 난 것으로 판명되면 승인해준 이사들이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일감 몰아주기 방식으로 자녀에게 증여·상속을 할 경우 세금 매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로써 경영권 승계는 상당히 힘들어졌다. 우리 현실이 그렇다. 상속세율은 전 세계에서 우리가 제일 높다. 일본과 같이 50%다. 미국은 45%, 프랑스·영국은 40%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붙어 최고 6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그룹 오너의 지분율이 평균 10% 선이라고 할 때 세금 내고 나면 3.5%만 남는다는 얘기다. 경영권을 승계할 수 없는 지분율이다.

그래서 찾아낸 해답이 일감 몰아주기였다. 자녀가 소유하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그 회사가 커지면 자녀 재산도 덩달아 늘게 하는 방식이다. 물론 편법이다. 때로는 불법도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그룹이 이런 식으로 증여·상속하고 있다. 편법과 불법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자녀에게 물려주겠다는 건 인간 본성이다. 그룹 오너라고 다를 바 없다. 특히 우리 문화는 더 강하다. 정치권과 정부가 아무리 옥죄어도 탈세라는 불법과 절세라는 편법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번 역시 성매매금지법처럼 소기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할 거다.

과거를 보면 알 수 있다. 1970년대 그룹들은 자신이 설립한 공익재단을 통해 상속했다. 그러자 정부가 철퇴를 가했다. 재단에 주식을 5% 이상 넘겨주지 말라는 법을 만들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았다. 전환사채 등 금융상품을 통한 상속 방식이었다. 다시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2004년 완전포괄주의라는 과세 원칙을 도입했다. 그런다고 단념할 그룹들인가. 일감 몰아주기 방식을 찾아냈다. 이번에 이걸 억눌러도 결과는 비슷할 거다. 다른 방식을 찾아낼 거다. 아니 이미 찾았을 것이다.

전형적인 ‘니르바나 정책’이다. 인간의 뿌리 깊은 상속 본능을 외면하는 정책이다. 효과는 별로 거두지 못한 채 부작용과 후유증만 쌓일 거다. 불법·편법이 양산되고 경영 효율성과 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 재산 상속과 경영권 승계에 숨통을 터줘야 할 까닭이다. 세율 인하를 통해 상속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은 어떨까. 중소기업에는 이미 상속공제제도를 실시하기에 하는 말이다. 국민 정서상 힘들다면 장하준 교수의 사회적 대타협론을 약간 응용하는 방안도 있다.

세금을 현물 주식으로 내게 한 후 정부가 일정 기간 보관하는 방식이다. 대신 후계자의 경영권은 보장한다. 나중에 주식을 되찾겠다면 그 권리도 인정해주면 된다. 정부는 배당 수익을 챙길 수 있다. 그 어떤 방식이든 숨통은 터주고, 퇴로는 열어줘야 한다. 그런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 짐승도 울타리가 너무 비좁으면 건강하게 자라지 못한다. 하물며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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