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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음 껴안아라, VIP 위한 죽음의 훈련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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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호 07면

경호처 경호관들이 김포 경호종합훈련장의 모형 시가지에서 폭발물이 터지는 상황을 가정해 연막탄을 터뜨리며 경호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대통령실 경호처 제공]

“차를 타고 내릴 때 문을 끝까지 활짝 열어요. 지금 여러분은 공간 확보가 안 됩니다. 또 항상 바깥쪽 발이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중앙SUNDAY에 첫 공개한 대통령실 경호처 종합훈련장

13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 인근 경호종합훈련장. 대통령실 경호처 훈련 교관이 아랍에미리트(UAE) 왕실경호대 소속 경호요원 30명에게 이동하는 경호차량에 타고 내리는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발이 경호차 뒷바퀴에 끼는 것을 막으려면 움직임에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게 이날 교육의 핵심 포인트다. 교관이 한 사람씩 불러내 탑승 자세와 주변 경계 요령을 설명한다. 훈련장엔 에쿠스를 비롯한 각종 훈련용 차량이 빼곡하다. 반복 훈련에 교육생의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다. 소감을 묻자 “비밀요원이어서 인터뷰는 곤란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UAE 왕실경호대 요원들이 경호종합훈련장 내 장애물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조용철 기자

김포공항 인근 4만 평 부지
UAE 왕실 경호요원들은 4일부터 29일까지 이곳에 머물며 경호 실무교육을 받고 있다. 중앙SUNDAY가 현장을 둘러봤다. 대통령실 경호처의 종합훈련장이 언론에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훈련장엔 “오직 한순간을 위하여” “충성을 행동으로 부단한 훈련” “임무 완수에 신명을 바친다” 등의 문구가 여기저기 내걸렸다.

종합훈련소는 주변이 공항 활주로에 둘러싸인 요새였다. 1차 검문소를 통과한 뒤에도 활주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갔다. 갑자기 높다란 철문이 나타났는데 입구에 아무런 표지가 없는 게 특이했다. 묵직한 철문을 힘겹게 열고 4만 평 부지의 훈련장에 들어서자 우선 보잉 737기가 눈에 들어온다. 항공기 테러 훈련장이다.

항공기를 왼쪽에 두고 돌면 인근에 개인별 선별 사격장과 이동타깃 사격장이 있다. 훈련 교관인 최모 경호관이 사격장에서 구르고 장애물을 넘어가며 사격 시범에 나섰다. 얼핏 보면 군 부대서 흔히 보는 사격 훈련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사격 자세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총을 쥔 최 경호관은 적의 총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잔뜩 쪼그리거나 움츠린 자세가 아니다. 몸을 최대한 부풀려 노출을 많게 하고 움직일 때 몸 동작이 크다. 정동활 경호처 훈련부장은 “‘체위 확장의 원칙’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러범으로부터 VIP에 대한 가시권을 줄이기 위해서다. 총을 빼든 경호관의 몸은 테러범 총탄을 막는 방패가 돼야 한다.

훈련장 내 경호무도관은 무술훈련장이다. 하지만 무술훈련 목표도 조금은 다르다. 몸을 무의식적으로 폭발음에 던져 VIP를 보호하는 게 훈련 목표다. 경호무도관 내엔 1~7번까지 번호판이 부착된 마네킹이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배치됐다. 이곳 저곳의 마네킹이 사방에서 불규칙적인 소리를 낸다. 1개 조 9명은 소리 나는 마네킹 중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훈련생이 가장 빨리 폭발음으로 뛰어든다. 이른바 ‘촉수 거리 원칙’을 반복 학습하는 것이다. 정 훈련부장은 “총소리가 난 뒤 경호요원이 허리춤의 총을 빼내 반응하는 시간을 0.725초 이내로 줄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강병진 경호과장은 “몸이 본능적으로 폭발음에 뛰어들도록 끝없이 반복 연습한다”며 “VIP를 위한 죽음 훈련”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근접 경호기법 세계 최고
1963년 창설된 대통령실 경호처는 미국 대통령 경호기관인 비밀경호대(Secret Service)의 경호 기법과 장비를 수입했다. SS는 미 재무성 소속의 위조지폐 수사국으로 출발했다. 1865년 링컨 대통령 이후 36년간 3명의 대통령이 잇따라 암살되자 1901년 매킨리 대통령 암살을 계기로 대통령 경호를 떠맡았다. 대통령 암살 기도가 많은 데다 미국 내에만 1억 정 이상의 총기가 돌아다니는 만큼 SS의 근접 경호기법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식 경호 기법과 시스템은 74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83년 버마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 등을 거치며 우리 현실에 맞도록 정비됐다. 경호처 김수병 공보관은 “근접과 외곽 등 3중으로 경호 집중도를 분산시키는 3중 경호 원칙에다 IT 기술을 접목한 경호처의 경호 기법은 국제적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는 인식률이 완벽에 가까운 얼굴인식 출입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경호 현장에 선보여 경호 관계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경호종합훈련장엔 VIP 최근접 경호를 위한 ‘탐지기법 훈련장’이 있었다. VIP가 머무는 숙소, 회의실, 접견실, 화장실과 비품이 배치됐다. 사제폭발물(Improvised Explosive Device) 테러 방지를 위한 탐지와 대응 훈련장엔 10대 지침이 걸려 있다. “모든 버튼은 눌러 봐라. 모든 줄은 당겨 봐라. 이동시켜 봐라. 열고 닫아 봐라….” 권총 암살은 7m 거리서 발생한 예가 많다고 한다. 1선 경호 훈련은 7m 원칙과 권총 사거리 내의 대처 요령에 집중됐다.

탐지기법 훈련장 밖은 2선과 3선 경호 훈련을 위해 2~4층의 다양한 빌딩이 있고, 재래시장이 있다. 기초 장애물 훈련장과 종합 장애물 훈련장엔 30종류 이상의 장애물이 설치됐다. 외줄을 오르고, 타고 내리고, 세 줄을 건너고, 뛰어 넘는 장비 등이다. UAE 왕실 경호요원들에겐 생소한 훈련 도구인지 구르다 떨어지고 다시 기어오르는 등 훈련장이 소란하다. 로프를 이용해 수직으로 떨어지는 레펠 훈련장에선 특전사 장교 출신의 정 훈련부장이 11m 높이서 수직으로 떨어졌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이 한꺼번에 벌어진다.

다자 정상회의가 한국 경호 성가 높여
33년 전인 78년 특공대 훈련장으로 만들어진 경호종합훈련장은 경호에 관한 한 육군의 논산훈련소에 해당된다. 군과 경찰은 물론 국정원, 국회 등의 모든 경호 관련 요원 훈련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경호처 경호관은 분기마다 2~3일에서 일주일 정도씩 훈련하고 평가 받는다. 뛰고 구르고 총을 쏘고 무술을 연마하고 팀워크를 다진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경호처 직원을 포함해 모두 1만2179명의 경호 관련 요원이 이곳에서 땀을 흘렸다. 훈련 교관은 10여 명이다.

UAE 왕실경호대 등 해외 경호요원 훈련에 개방된 것은 2007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APPS(국제경호책임자협회) 총회가 계기였다. 경호처는 21개국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2005년 부산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경험을 소개했다. VIP 보호에 치중하는 한국의 경호 방식이 세계 각국의 경호 책임자들에게 먹혔다고 한다. 김 공보관은 “동남아 등 해외 경호요원의 경우 시설물 경비 업무에 치중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 총회가 끝나자 캄보디아 총리경호대와 카타르 왕실경호대 등 여러 나라로부터 교육 훈련 요청이 잇따랐다. 캄보디아 경호요원 5명에게 경호 시범을 보인 게 ‘경호 수출’ 시작이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경호종합훈련장엔 ‘국제경호 안전과정’이 생겼다. VIP 행사에 앞선 선발과 VIP 수행, 검측, 무도, 사격 등을 포함하는 1개월 기본 훈련 과정이다. 서울 G20 정상회의 등의 다자간 정상회의가 한국 경호의 성가와 수요를 높였다. 모두 153명의 해외 경호요원들이 국제경호 안전과정에서 교육 받았다.

정 훈련부장은 “VIP를 1명과 여러 명이 경호할 때 각각의 경우마다 경호관 위치와 경계요령이 다르다. 체계적인 교육은 전 세계에서 경호처 훈련장이 유일하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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