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고리 원전 1호, 재가동 미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신고리3호기 건설현장 찾아간 의원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15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신고리3호기 원자로 건설현장을 찾았다. 한국수력원자력㈜ 김종신 사장(왼쪽)이 의원들에게 건물 내부를 설명하고 있다. [울산=국회사진기자단]


지난 12일 차단기 고장으로 원자로가 멈춰선 고리 1호기는 충분한 안전점검을 위해 15일로 예정됐던 재가동을 미뤘다. 교육과학기술부 손재영 원자력안전국장은 15일 “ 고장 원인을 면밀하게 살피는 데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최소한 17일까지는 재가동 승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이날 가동이 중단된 부산 고리원전을 찾아 안전성 여부를 집중적으로 따졌다. 여야 의원들은 고리원전 1호기가 30년 설계수명 완료 후 2008년 수명연장으로 재가동됐다가 12일 고장으로 가동이 중지된 점을 중시,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폐쇄를 주장하기도 했다.

 ▶조경태(민주당·부산 사하을) 의원=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고리1호기가 부품을 대폭 교체해 새로 건설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하지만 고리1호기는 몇 개 부품만 교체한 것으로 확인됐다. 즉각 1호기를 폐쇄해야 한다.

 ▶정영익 고리원자력본부장=주요 설비 교체와 국제적 안전성 평가 기준을 모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수명 연장된 1호기의 안전성은 매우 높고 신뢰할 만하다.

 ▶이상권(한나라당·인천 계양을) 의원=낡은 양말을 꿰매 신는 것처럼 오래된 원전을 수명 연장해서야 되겠느냐.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으니 폐쇄를 검토해 봐야 한다.

 ▶정 본부장= 고리 원전1호기는 미국 원전을 모델로 하고 있다. 미국 원전의 경우 설계수명이 40년인데 우리는 30년으로 정한 것이다. 따라서 30년 만에 원전을 폐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박진(한나라당·서울 종로) 의원=전국적으로 2016년이면 폐연료봉 저장 시설이 포화상태가 된다. 정부와 협의해 근본대책을 세워야 한다.

 ▶김종신 한국수력원자력 사장=국가정책으로 결정해야 하는데, 현재는 압축기술로 저장용량을 늘리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빨리 건설해야 한다.

 ▶박 의원=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전기가 끊어지면 우리 원전에서도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나.

 ▶정 본부장= 그렇지 않다. 후쿠시마 원전엔 비상발전기만 있다. 우리는 비상디젤발전기(EDG)가 있고 이게 가동이 안 되면 대체교류디젤발전기(AAC-DG)가 있어 후쿠시마 원전과 비교할 수 없다.

 ▶박 의원=고리1호기의 재가동은 누가 결정하나. 전담 팀이 나와 있나.

 ▶정 본부장=교육과학기술부가 결정한다. 현재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서 4명이 나와 상황을 지체 없이 보고하고 있다.

 ▶홍일표(한나라당·인천갑) 의원=이번 고장의 원인은 불량 부품이 납품됐기 때문인가.

 ▶정 본부장=그렇게 보고 있다. 앞으로 납품업체 점검에 만전을 기하겠다.

정몽준 의원(左), 이상권 의원(右)

 의원들은 현황 보고를 받은 뒤 고리1호기의 전원이 끊겼을 때 가동할 수 있는 비상디젤발전기와 건설 중인 신고리 3호기의 격납·연료건물 내부 등을 둘러봤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도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고리원전 1호기 등 노후 원전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 전 대표는 “과거 정부에서 원자력발전의 최고 책임자를 지낸 장관급 인사를 사석에서 두 차례 만났는데 고리원전 1호기의 안전성에 대해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전문가 사이에서도 연장 가동 중인 고리원전의 안전성에 대해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월성 1호기 등 노후 원전의 사용연장은 더욱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고리 1호기는 고장 원인을 파악하고 수리까지 마쳤으나 교과부가 꼼꼼한 점검의 필요성을 들어 재가동 승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교과부 손재영 원자력안전국장은 “고장 원인을 밝히고, 안전에 이상이 없다는 것이 확인된 뒤 재가동 승인을 해줄 계획”이라며 “고리 1호기를 점검할 때 원전 운영업체인 한국수력원자력 입장이 아닌 규제기관의 입장에서 꼼꼼히 살펴보겠다”고 덧붙였다.

 원전이 고장이나 사고로 가동이 중지됐을 때 재가동 승인 절차는 두 가지가 있다. 경미한 경우 원자력 안전 규제 기관인 KINS의 전문가와 교과부의 원전 주재관이 현장을 확인한 뒤 ‘수리가 완료됐고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교과부에 구두 승인을 요청한다. 현장에서 재가동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교과부에서는 받아들이는 게 통상 절차다. 큰 고장의 경우 교과부에 문서를 통해 승인 요청을 해야 한다.

 ◆주민불안=고리 1호기 재가동이 연기되자 인근 주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고리원전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기장군 장안읍 길천리 박갑용(48) 이장은 “재가동을 연기한다니 가슴이 철렁한다”며 “전문가 점검을 통해 전기계통 이상이라고 밝혀졌으면 전기계통만 고치면 될 텐데 다른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울산시의회는 15일 ‘원자력발전소 확대정책 재검토 및 안전성 강화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고 “수명 연장한 고리원전 1호기의 가동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시의회는 결의안에서 “고리원전과 신고리원전·월성원전 등 총 9기 원전에 둘러싸여 있는 울산에서 일본처럼 사고가 나면 시민 80만 명 이상이 방사능에 노출될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며 “2012년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월성 1호기의 수명연장 계획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정효식 기자
부산=김상진·황선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