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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의 지구촌 NGO 테마 탐방] ① 필리핀 SRD 맞춤형 도시 빈곤아동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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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중앙일보 시민사회환경연구소 전문위원
남서울대 교수

필리핀 마닐라시 서북쪽 파시그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톤도(Tondo)지역.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가 멀리 바라보이는 마닐라의 빌딩숲과 대조를 이룬다. 쓰레기 더미 사이로는 너절한 판자집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마을로 들어서면 숯공장에서 풍기는 매케한 냄새가 진동한다. 쓰레기 산 위에는 얼굴에 땟국이 흐르는 아이들이 땡볕에서 꼬챙이로 연신 뒤적인다. 폐품을 주워 팔려는 마을 꼬마들이다. 온갖 쓰레기들이 모여 쌓이던 1970년대 서울 난지도의 풍경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곳의 덤프사이트(쓰레기 하치장) 지역은 그때의 난지도보다 훨씬 크고 넓다. 주민도 꽤 많아 줄잡아 4000여 가구 2만여 명이 살고 있다. 주거기반이 불확실한 사람들이 많으므로 정확한 집계는 아니다.

도시빈민의 상징인 톤도지역에서도 이곳 쓰레기 하치장은 오갈 데 없는 극빈층의 보금자리다. 이곳에서 미취학 아이들에게 음식과 교육, 그리고 맑은 웃음을 주기 위해 봉사하는 현지 아동NGO가 있다. SRD(Self Reliance & Development)센터다. 우리말로 ‘자립, 자기계발 센터’쯤 된다. 사업을 시작한 지가 올해로 꼭 20년. 필자가 이곳을 찾은 건 지난 2월이었다.

“돌봐야 할 아이들도 많고 할 일도 많은데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감사하죠. 저 어린애들은 틀림없이 부모와 다른 삶을 살아갈 테니까.”

이곳에서 18년째 일하는 SRD 사무총장 테레사 메르카도(48·여)는 “지금은 가장 더럽고 낙후된 곳이지만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에서 미래를 본다”고 말한다.

필리핀 마닐라 인근의 톤도지역에서 한 소년이 쓰레기 하치장을 무심하게 지나고 있다. 그 너머로 판자집들이 늘어서 있다.

SRD는 1991년에 세워졌다. 톤도지역 쓰레기 하치장이던 스모키 마운틴의 빈민가정을 돕자며 뜻있는 사람 몇몇이 나섰다. 마침 일본의 한 기독교 재단이 기금을 후원했다. 그렇게 시작이 된 센터가 몇 년 전 좀 더 바닷가 쪽인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스모키 마운틴이 쓰레기로 꽉 차면서 폐쇄가 되고, 현재의 덤프 사이트로 쓰레기 하치장이 이전해온 것이다. SRD는 스모키 마운틴과 새 덤프사이트 중간쯤에 위치한다. 주변의 빈곤아동들, 대략 반경 1㎞ 정도 이내의 아이들이 돌보기 대상이다. 작은 2층 건물인 SRD센터의 위층에는 테레사 총장 등 스탭들과 장기 봉사자 등 5~6명이 숙식을 한다. 아래층은 프로그램실이다.

프로그램실은 매일 부산하다. 오전에는 스모키 마운틴 지역 아동 50여명, 오후에는 스모키 마운틴과 덤프사이트 아동 70여명을 모아 탁아와 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모두 3~5세 미취학 아동들이다. 이들을 3개 반씩 나눠 읽고 쓰기, 미술 공예, 수학 등을 가르친다.

“영양·건강과 심리적인 면도 돌봐주지요. 특히 꿈을 심어주려 노력해요. 부모의 삶과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반복해 심어줍니다. 아직 아기들이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배우는지 이해해요.”

SRD센터 직원들과 지역 빈곤 아이들 모습.

SRD에서 11년째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지나(32)는 “어릴 때부터 인지· 학습능력과 습관을 바꿔 희망을 가진 청소년으로 크도록 돕는 게 우리 목표”라고 했다. 보모 2명, 교사 3명, 사회복지사 1명, 봉사자 2명 등이 아이들을 한명 한명씩 세심하게 돌본다. 아이들만 돌보고 교육하는 게 아니다. 가정 방문을 해서 부모들에 대한 교육도 한다. 또 매일 점심 때면 덤프사이트를 찾아가 센터에 와서 교육을 받지 않는 좀 더 큰 아이들에게 급식도 해준다. “초기에 교육 받았던 아이들이 청년이 돼 교사나 경찰, 사회사업가의 꿈을 키우고 있어요. 보람 있고 흐뭇합니다.” 최근엔 한 한국인의 후원을 받아 제 2의 센터 설립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오후 3시 반. 흰 상의에 초록색 하의 교복을 입은 꼬마들이 재잘거리며 지프니차(개조 승합차)에 올라탄다. 귀가 시간이다. 집에 가면 다시 남루한 옷에 새까만 얼굴로 돌아가지만 다음날엔 또 깔끔한 교복 차림으로 이곳에 온다. 구김살 없는 얼굴로.

이창호 중앙일보 시민사회환경연구소 전문위원·남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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