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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동행] “봉사DNA요? 우리 국민 누구나 갖고 계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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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기에 아주 특별한 손님이 와 있습니다. 임수빈양입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노래를 선사하겠다고 합니다.”

소개를 마친 최수종씨가 기타를 든다. 최씨의 반주에 맞춰 일곱살 수빈이가 ‘곰 세마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무대가 처음인 아이의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가냘펐다. 옆에 서있던 하희라씨가 다정히 아이의 어깨를 감싸며 노래를 거든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역삼동 신한아트홀. ‘최수종과 하희라의 희망 나눔 콘서트’ 리허설이 한창이다. 뜻밖의 사고로 흉한 화상을 입은 어린이 환자들을 위한 행사다. 얼핏 보기엔 그냥 이쁜 꼬마 아가씨인 수빈이도 전신화상으로 목부터 온몸에 흉터가 있다. 사람들 시선이 두려워 외출을 꺼리던 아이는 최씨 부부의 도움으로 흉터 성형 수술을 받으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됐단다.

최근 최씨 부부는 ‘좋은 사회를 위한 100인 이사회’를 통해 더욱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두 사람은 이제 단순히 나눔활동을 많이 하는 스타 부부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나눔의 정신을 퍼뜨리고 실천케 하는 리더를 꿈꾸고 있었다.

최수종(49)과 하희라(42). 얼마 전 종영한 TV 드라마 ‘프레지던트’에는 모처럼 부부역할로 동반출연한 대한민국 대표 연예인 커플.

하지만 두 사람이 끊임없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 건 꼭 스타 부부라서 만은 아니다. 나눔과 봉사라는, 어느새 직업만큼이나 둘의 일상으로 자리잡은 아름다운 활동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최씨가 주축이 돼 발족한 ‘좋은 사회를 위한 100인 이사회’도 한 예다. 이순재·신영균·이덕화 등 ‘국민배우’급에서부터, SS501의 김형준이나 ‘달인’ 김병만 등 신세대가 열광하는 스타들까지 함께하는 봉사모임이다. 아내 하씨도 물론 함께다. 하나같이 바쁜 사람들이 모여 ‘대중문화예술인들이 앞장 서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으니 더욱 반향이 크다.

중앙일보 공익섹션 ‘행복 동행’ 첫 호의 커버스토리로 두 사람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나눔이나 봉사활동이 어느 덧 트렌드로 자리잡았지만, 개인적인 성향이 큰 스타들을 그렇게 조직화해 끌고 나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사람에게는 과연 어떤 특별한 사연이나 DNA가 있는 걸까. 대답은 이랬다. “봉사 DNA요? 누구나 갖고 계시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

6일 1시간에 걸친 전화 인터뷰에 이어, 7일 서울 역삼동 신한아트홀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하트하트재단과 함께 어린이 화상환자들을 위해 마련한 ‘최수종·하희라의 희망 나눔 콘서트’ 현장에서다.

7일 오후 서울 역삼동 신한아트홀에서 최수종하희라 부부가 어린 화상환자들을 위한 ‘희망 나눔 콘서트’를 열었다. 최씨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는 수빈이를 하씨가 거들고 있다. [김도훈 기자]

“드라마 하다 보면 이런 일 많이 하기가 어려우니 쉬는 동안엔 아낌없이 시간을 내려고 해요. ‘프레지던트’ 마지막 회 촬영을 마친 바로 다음 날에도 100인 이사회 식구들과 함께 독거 노인들에게 무료급식 봉사를 했어요. 누가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기에 ‘아무래도 이건 내 사명인 것 같다’고 대답했어요. 더불어 살고, 따뜻하게 살고, 사랑이 넘치는 세상, 후손에게 물려줄 만한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려면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최수종)

인터뷰 내내 모범답안 같은 말이 잇따랐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부부가 건넨 마지막 말은 ‘모범답안 종결자’였다. “비도 오는데 취재하러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런 (화상 등으로 고통받는) 아이들 얘기, 나눔과 봉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기사로 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감동을 주는 것도 기자들의 재능 나눔이라고 생각해요.” 참으로 진심이 다가왔다.

● 드라마도 끝났는데 두 분 다 여전히 바쁜 것 같다.

최수종(이하 최)=“굿네이버스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다녀왔다(※최씨는 국제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의 친선대사다). 아프리카엔 처음이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정말 답이 없어 보였다. 돌아와서는 중증장애인들이 사는 한사랑마을에 갔다. 도배하고 마루 깔고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봉사활동을 했다. 그 애들을 보니 또 얼마나 가슴이 아리던지…. 작별 인사하고 나오며 많이 울었다.”

하희라(이하 하)=“지난해부터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사회복지 석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다. 선한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다. 여기서 얻은 지식을 어떻게 지혜롭게 잘 쓰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 이렇게 나눔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최=“1980년대 중반 사업을 하시던 아버님이 빚만 잔뜩 남긴 채 돌아가셨다. 미국 유학을 접고 그냥 돌아와야 했다. 오니 아무 것도 없었다. 빚쟁이들만 쫓아다니고, 밖에서 자는 건 기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거리에서 자고 있는데 어떤 분이 신문지 한 장을 건네줬다. ‘이거라도 덮으면 따뜻하니 덮고 자라’고 했다. 그분도 노숙자였다. 충격이었다. 저런 여유가 어디서 생겼을까 싶었다. 신도, 부모님도, 많이 원망하던 때였는데 그 분을 보고 잊어버렸던 기도를 다시 하게 됐다. 마음 잡고 열심히 돈을 벌 테니 나한테도 저분처럼 남을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의 능력을 달라고 빌었다.”

그때부터 최씨는 돈을 벌면 교회에서 형편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학용품을 사주곤 했다고 한다.

하=“저는 결혼 후 최수종씨가 심장병 어린이에 관한 기사를 읽고 도와주자고 해서 흔쾌히 동의한 게 처음이었다. 그 다음엔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첫 아이를 제왕절개 수술로 낳고 병실에 있을 때, 사인 받으러 온 소아암 환자들의 애틋한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하씨는 세 번의 유산 끝에 큰 아들을 얻었다). 큰 아이 백일 잔치 때는 당시 소년소녀 가장이라 부르던 아이들 100명을 초대해 같이 음식 먹고 그랬다.”

● 말 그대로 부창부수(夫唱婦隨)다. 특별한 이벤트를 많이 하는 닭살커플로도 유명한데.

하=“(웃음)지난 결혼기념일(11월 20일)엔 100인 이사회 식구들과 연탄배달 봉사를 했다. 세 개씩을 지고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내렸더니 발톱에 피멍이 들었다. 마지막 연탄을 내려놓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해냈구나, 싶었다. 앞으로 기념일엔 그렇게 봉사를 하기로 했다. 봉사 이벤트. 서로에게 그게 가장 의미 있을 것 같다.”

● 자녀들과도 봉사활동을 같이 하나.

최=“지금 최민서씨가 초등학교 6학년, 최윤서씨가 5학년이다(※최씨는 아내는 물론 남매인 자녀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한다.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뜻이란다). 그 동안은 어려서 함께할 만한 봉사활동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가 2년 전 화상환자들을 위해 복음성가 음반을 내고 쇼케이스를 할 때 두 사람이 각자 배우던 바이올린과 플루트를 연주했다. 저는 기타치고, 하희라씨는 노래하고 ….”

하=“그때 ‘재능기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우리가 그냥 기부금을 냈더라면 음반을 만들어 수익금을 기부하는 것보다 꾸준히 하기 어려웠을 거다. 아이들도 그렇게 참여해 작은 도움이 된 걸 무척 보람 있어 했다.”

● 100인 이사회도 스타들의 재능기부인가.

최=“요즘엔 많은 대중문화인들이 나눔 활동에 동참하려고 한다. 그런데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거나, 아직 여건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 사실 그렇지 않다. 수 억 원을 기부한다는 누구와 비교할 필요도 없다. 사랑을 전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할 수 있는 일들은 정말 많다.”

● 방송과 봉사활동, 그리고 가정생활을 병행하기 쉽지 않을 텐데.

최=“(웃으며)쉽다. 조금의 절제만 있으면 된다. 저라고 친구들 만나 놀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나.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할애해 가족과 있으려고, 스케줄 맞추려고 노력하면 그런 시간 다 만들 수 있다.”

하=“내 아이들이 어떤 모습을 갖게 되면 좋을까 생각하다 보면, 결국 내 스스로 어른을 공경하고 나눔 활동 하는 걸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하다 보면 그게 아이들 교육이 된다.”

● 그런 본보기가 많이 담긴 공익섹션을 만들어 보겠다.

최=“최고다. ‘행복동행’섹션이 모두가 사랑과 기쁨·행복·나눔을 함께하는 데 동행자·동반자가 되길 바란다.”

최씨는 즉석에서 『행복동행』 독자를 위한 덕담을 A4용지에 써서 기자에게 건넸다.

글=김정수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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