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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삼성·LG 싸우는 사이 일본 3D 안경 통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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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

지난달 말 파나소닉을 비롯한 일본 가전업체들이 3차원(3D) 안경 기술을 공용화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히타치·미쓰비시·뷰소닉·세이코 엡손·엑스팬드 등 가전사들이 뭉쳐 ‘M-3DI’라는 진영을 구축한 것이다. 이들은 서로 힘을 합치게 된 배경에 대해 “시청자들은 집이나 극장, 어디에서든 하나의 안경으로 모든 3D 콘텐트를 감상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일본 가전업체들이 동일본 대지진의 와중에 힘을 모으고 있을 때 우리는 어땠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3D 기술 방식을 놓고 지난달 내내 열띤 설전을 벌였다. 상대편 기술을 폄하하는 광고전까지 펼쳤다. 3D TV에서 시작된 ‘힘겨루기’는 세탁기로 주방가전으로 번졌고, 전기차 배터리로도 옮아갔다. 서로에게 유리한 시장 점유율 데이터를 내세우며 ‘내가 1등’이라고 핏대를 올리기 바빴다. 지난주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같은 날 신제품 발표회를 열어 상하이의 VIP 고객을 양분했다. 이에 대해 양사 관계자들마저 “서로 다른 날 신제품을 발표했다면 두 회사 모두 현지 언론을 통해 눈길을 끌었을 텐데 사전조율이 아쉬웠다”고 말할 정도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두 회사는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현재의 글로벌 기업으로 커왔다. 경쟁이 가져다준 과실이다. 삼성과 LG 관계자들은 서로 사석에서 “상대방이 없었으면 아마 국내 1등의 매너리즘에 빠져버렸을지 모른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도를 넘어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상대편을 깎아내린 것이 다시 부메랑이 돼 돌아오기 때문이다. 힘들게 쌓아올린 브랜드 이미지도 훼손된다. 세계 전자업계는 한순간만 방심하면 글로벌업계 판도가 뒤바뀌는 치열한 격전장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적과의 동침까지 요구될 정도다. 일본 업체들이 경쟁을 접고 손을 맞잡은 이유다.

 2년 전 두 회사의 모습은 달랐다. 액정화면(LCD) 패널을 교차 구매한다는 제휴를 맺을 때만 해도 서로 의기투합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실제 구매로 이어진 적은 한 차례도 없다. 협력은 경쟁 못지않게 중요한 전략이다. 두 회사가 힘을 합해 인재를 양성하고 기술을 개발하면서 글로벌 무대를 휩쓰는 모습을 보고 싶다.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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