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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국판 오나시스의 4100억원 탈세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엊그제 국세청이 발표한 역외탈세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41건의 해외탈세에 대해 4741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규모도 엄청나거니와 역외탈세가 이토록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적발된 사람 가운데 지금까지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기업인이 우리나라의 선박왕이며, 세금 추징액이 무려 4101억원이라는 점도 충격적이다. 보유 선박이 국내 최대 선사인 한진해운보다 많고, 개인에게 부과된 추징세액도 역사상 최대다.

 국세청은 탈세 수법이 매우 지능적·전문적이라고 밝혔다. 개인인 경우 국내 거주자는 과세 대상이다. 일정 기간 국내에 거주하면 외국인도 세금을 내야 한다. 법인은 주요 의사결정 등 핵심적인 경영활동이 국내에서 행해질 경우 과세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선박왕은 교묘하게 이 기준을 피해 나갔다는 게 국세청 설명이다. 국내에 거주하면서도 사는 집의 전세계약은 친인척 명의로 해 한국에 살지 않는 것으로 위장했고, 경영활동도 국내에서 대부분 하면서 홍콩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에서 한 것처럼 속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선박왕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외국에 거주하고 있고, 세금도 거기서 다 냈으며, 경영상 주요 결정도 홍콩에 있는 회사에서 하고 있다는 반박이다. 아직은 누구 얘기가 사실인지 분명치 않다. 국세청이 검찰에 고발해 수사가 시작됐으니 법정에서 사실 여부가 밝혀질 것이다.

 현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건 역외탈세에 대한 국세청의 활발한 활동이다. 그동안 일부 부유층과 기업가들의 해외 탈세에 대한 소문은 꾸준히 있어 왔지만 국세청의 조사는 미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점에서 세무당국이 지난해부터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역외탈세를 추적하고 있는 건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국세청이 미리 목표를 정해놓고 그걸 채우기 위해 무리수를 범해선 안 될 일이다. 국세청이 진작 올해 역외 탈세 추징액 목표를 1조원으로 잡아 놓았기에 하는 당부다. 조사와 추적은 한층 강화하되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