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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사실혼의 법적 보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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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희 변호사

과거와 달리 요즈음 커플들은 결혼에 앞서 당당하게 동거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결혼식을 하고도 혼인신고를 일정기간동안 하지 않거나 혹은 2세가 태어날 때까지 미루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천차만별이겠으나, 일단 결혼식을 하거나 혼인신고를 하게 되면 추후 헤어지게 될 경우 이혼 등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일단 한번 살아본 후에 정식 부부가 될 것인지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기 위함이라고.

 그러나, 결혼식만 하지 않는다면, 혹은 혼인신고만 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 없이, 말 그대로 ‘쿨하게’ 갈라설 수 있을까.

 물론 거의 대부분의 계약이 그러하듯 당사자들의 합의만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양 당사자가 단지 혼인신고만 하지 않았을 뿐 부부로서의 실체를 갖춘 이른바 ‘사실혼 관계’였다면 이는 혼인관계에 준하는 법률상 보호를 받을 수 있으므로 이혼에 버금가는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선 사실혼이 대체 무엇일까. 어떤 경우에 사실혼 관계가 성립되어 법률상 혼인에 준하는 효과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일러스트=김영주


 사실혼이란 주관적으로는 혼인의 의사가 있고, 객관적으로는 사회관념상으로 가족질서적인 면에서 부부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혼인생활의 실체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상 혼인으로 인정되지 않는 부부관계를 말한다.

 따라서 단순한 남녀 간의 성적결합이나 일시적인 동거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혼인의사가 있다고 볼 수 없어 사실혼이 성립될 수 없겠지만, 결혼식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혼인의 의사로 공동생활을 한 것이라면 이는 사실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처럼 사실혼이 성립된 경우에는 준혼으로 파악되어 혼인에 관한 효력 중 혼인신고를 전제로 하지 않는 것은 사실혼에도 모두 인정된다.

 따라서 법적인 부부와 마찬가지로 사실혼 부부 상호간에도 동거. 부양. 협조 의무는 물론 정조의 의무도 인정되고, 사실혼 일방 배우자가 사실혼관계를 부당하게 파기한 때에는 상대방 배우자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위자료)을 지며, 사실혼이 해소된 경우 일방 배우자는 상대방 배우자에 대하여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사실혼 부부는 제3자에 대해서도 보호되어야 하므로 사실혼관계에 있는 배우자도 다른 배우자가 제3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상해를 입은 경우 자기가 받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고, 다른 배우자와 정교를 맺은 자 등 사실혼관계를 부당하게 파탄시킨 자에 대하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에 법원은 사실혼관계에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한 행위는 사실혼 부당파기에 해당하고, 시어머니가 혼인 때 며느리에게 준 패물을 빼앗고 그 의류를 친정으로 보낸 것은 시어머니가 아들 내외의 사실혼관계를 부당파기하는데 가담한 것으로 상대방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시한 바 있으며, 사실혼 배우자 일방이 상대방과 다툰 후 집을 나가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한 경우 이는 악의의 유기에 의하여 사실혼관계를 부당하게 파기한 것으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혹은 결혼이라는 번거로운 절차가 싫어 혼전동거 혹은 사실혼을 선택한 것이라도 이는 혼인신고의 유무에만 차이가 있을 뿐 혼인에 준하는 법적 구속력이 있음을 명심하고 부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유유희 변호사
일러스트=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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