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현장] 시민 위한 ‘생태섬’ 옥상공원 … 나무·흙 대신 담배꽁초 수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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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논현동 트리스빌딩 옥상공원에서 한 시민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곳은 ‘시민 휴식공간’이 아닌 흡연실이 된 지 오래다. [김도훈 기자]


지난 4일 낮 12시 서울 중구 명동 유네스코 빌딩 11층. 옥상공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닫혀 있었다. 이곳은 서울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명동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명소로 소문난 곳이었다. 이날 점심시간을 이용해 이곳을 찾은 회사원 안모(36·여)씨는 “올해부터 개방을 안 한다”는 건물 관리인의 말을 듣고 발걸음을 되돌렸다. 인근 광화문에서 직장을 다니는 안씨는 “인터넷에 가볼 만한 곳으로 소개해 찾아왔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유네스코 빌딩은 민간 소유의 건물이지만 2002년 면적 608㎡ 규모의 옥상공원을 조성하면서 비용의 절반을 서울시에서 지원받았다. 세금으로 만든 곳에 세금 낸 시민이 들어갈 수 없게 된 거다.

 지난해 조성된 서초구 방배동 유경빌딩 옥상공원도 7층 계단에서 옥상으로 통하는 문을 잠가 놨다. 관리인은 “여러 사람이 드나들면 엉망이 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역주민이 옥상공원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2009년 이후 사업비를 지원한 건물에 옥상공원 이용 안내판을 설치하도록 했지만 이 건물엔 그마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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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는 ㎡당 9만~11만원, 공원당 평균 300만~500만원을 들여 옥상공원을 조성해왔다. 민간 건물 소유주가 옥상에 공원을 만들 경우, 비용의 50~70%를 지원하고 있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416억원을 들여 446곳을 만들었다. 올해도 107곳을 만든다. 서울시 조경과 관계자는 "2㎞마다 옥상공원이 생기면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곤충이 돌아오는 등 ‘생태섬’ 역할을 하고 도시가 뜨거워지는 열섬화 현상도 막기 때문에 시민에게 개방이 안 돼도 만드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심 속 생태계’ 역할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관리가 엉망인 옥상공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동구 성동1가 동심빌딩 옥상공원은 돌보지 않는 티가 역력했다. 부서진 의자와 에어컨 실외기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흙이 거의 사라진 화단에는 담배꽁초만 수북했다. 유명 영화사 등이 입주한 논현동 트리스빌딩 6층 테라스에 만들어진 옥상공원은 아예 흡연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옥상공원의 바닥 대부분엔 목재 바닥재가 깔려 있었고 공원 가장자리엔 나무를 심었지만 ‘생태섬’이라기보다는 조경시설에 가까워 보였다.

 이처럼 옥상공원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건 이를 관리, 감독할 인력이나 예산이 없어서다. 공원이 망가지거나 건물 주인이 개방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시에서는 모르고 지나가기 일쑤다. 서울시는 1년에 한 번 원예학과나 조경학과 학생 2명을 임시로 고용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간 건물은 사유재산이라 개방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며 “올해부터는 사업 신청자에게 옥상공원 이용 활성화 계획을 함께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전영선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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