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수퍼, 다시마 동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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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마 다 팔렸어요” 전국에 내린 ‘방사능 비’의 영향으로 소금과 미역·다시마 등 요오드 함유 식 품의 사재기가 다시 늘고 있다. 7일 이마트 서울 용산역점 건해물 담당 직원이 비어 있던 김·다시마 매대에 상품을 채워 넣고 있다. [김태성 기자]


전국에 ‘방사능 비’가 내린 7일 밤 10시 서울 영등포구 이마트 타임스퀘어점.

 주부 김영민(34)씨는 1㎏짜리 천일염을 열 봉지나 카트에 쓸어 담았다. 이날 김씨가 구입한 소금은 총 16㎏으로 4인 가족이 1년은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김씨는 “안동과 울산의 친척들이 동네에선 소금을 구할 수 없다며 방사능 피폭에 좋은 요오드가 많이 든 천일염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남들도 다 사재기를 하니까 불안해서 나도 덩달아 더 사게 된다”고 했다. 이날 이 매장의 소금 판매대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같은 시간 서울역 롯데마트에서는 직원 김수경(39)씨가 건어물 판매대에 미역·다시마를 채워 넣고 있었다. 김씨는 “일본 대지진 직후 급증했다 다시 줄어들던 미역·다시마 판매량이 이번주부터 늘었다”며 “일본인 관광객들도 평소 찾던 김 대신 미역이나 소금을 사 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주춤했던 소금·미역·다시마 등 요오드 함유 식품 사재기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시내 이마트 10개 지점의 경우 소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세 배, 미역·다시마는 두 배 이상 더 팔렸다. 이마트 관계자는 “미역은 손님들이 매장을 찾아 직접 고르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인터넷 주문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재기가 다시 고개를 드는 이유는 7일 내린 방사능 비로 인한 불안감 때문이다. “일본에서 유출된 방사능 물질은 절대 국내에 유입되지 않는다”던 정부의 발표와 달리 세슘 등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점도 한몫했다. 8일 서울 양재동 이마트에서 만난 주부 심수경(43)씨는 점원에게 다시마의 생산일자와 보관기한 등을 꼼꼼히 물었다. 최근 건조된 다시마일수록 방사성 물질의 흡착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걱정 때문이다. 심씨는 “이제 동네 수퍼마켓에선 다시마를 구할 수도 없다”며 “방사능 오염이 5년은 간다고 해 최소한 1년 치는 미리 사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심씨는 지난달에 건조된 미역과 다시마 세 봉지를 샀다.

 물량이 부족해지자 친지 등을 통해 ‘공수’하는 경우도 늘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구이영(36·여)씨는 얼마 전 경남 창원의 친정어머니로부터 “미역을 보내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앞으로는 미역도 방사능에 오염될 테니 미리 대량으로 부쳐주겠다는 것이었다. 두 아이를 둔 대학원생 박수아(32·여)씨는 경남 거제에 사는 친척이 보내준 다시마를 식탁에 올리고 있다. 박씨는 “아이들이 다시마를 싫어하지만 방사능 걱정에 억지로 먹이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회사에서는 판촉을 위해 다시마를 상품으로 내걸었다. 삼성생명 일부 영업소는 이달 초에 보험계약을 따 온 설계사에게 2㎏짜리 다시마 5~10박스를 포상으로 줬다. 설계사 장영숙(56·여)씨는 “방사능 우려 때문인지 다시마를 받은 설계사와 고객들의 반응이 다른 사은품에 비해 더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사재기를 ‘과민반응’이라 해석했다. 안지현 중앙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방사능이 원인인 갑상선암을 막기 위해선 성인 한 명이 매일 미역 1.2㎏을 먹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안영실 아주대병원 핵의학과장 역시 “방사능에 피폭됐을 때 치료에 필요한 요오드는 소금이나 해조류를 먹는다고 채울 수 있는 양이 아니다”며 “해조류를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오히려 몸속에 요오드가 쌓여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글=이한길·김혜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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