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109)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 ⓒ 김영진, heakwan@ymail.com

돌아눕는 뼈 9

문이 열렸을 때 장애인 여자는 야수와 같이 노파를 공격했다.
거의 전신이 마비됐다고 하지만, 백발노파는 장애인 여자의 팔과 손아귀 힘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노파는 발목이 잡혀 화장실 문지방 위로 쓰러졌으며, 장애인 여자는 쓰러진 노파의 머리채를 휘감아 잡은 채 어깻죽지를 힘껏 물어뜯었다. 살점이 뚝 떨어져 나왔을 만큼 모진 공격이었다. 노파는 이내 혼절했다. 장애인 여자는 그래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살점이 떨어져 나온 데가 세 군데나 됐다. 목 놓아 울고 있는 장애인 여자의 잇속은, 방구댁이 피를 닦아냈는데도 불구하고 핏물이 응고된 채 치석처럼 끼여 있을 정도였다. “나를…… 걷지 못한다고…… 늘 조롱했다고요. 늙어서…… 낼모레…… 죽을 할망구가…… 감히…….”라고, 장애인 여자는 씩씩대면서 계속 악을 썼다. 사람들이 쫓아 들어오지 않았다면 장애인 여자는 아마 노파의 온몸을 물어뜯어서 죽였을 것이었다.

패밀리들 사이에서의 불화는 계속되었다.
장애인 여자와 백발노파가 싸우고 난 다음 날엔 이모들 둘이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싸웠다. 젊은 서씨를 사이에 두고 기왕 있어온 갈등이 불거져 나온 일종의 치정싸움이었다. 방구댁조차 그 싸움엔 영 심기가 뒤틀린 눈치였다. 다리를 쓰지 못하는 영감이, 온몸이 조금씩 썩어 들어가는 희귀병을 가진 중년여자의 뺨을 후려친 것도 그날이었다. 장기적으로 머무는 ‘패밀리’들은 어떤 의미에서 다 쓰레기 같은 인생이었다. 그들은 언제 죽어도 상관없는 ‘잉여인간’들이었다.
“미소보살님이 없으니까 이거 원…….”

방구댁이 혼잣말로 미소보살을 원망했다.
미소보살이 없으니 패밀리들 사이에 여러 가지 전에 없던 일이 벌어진다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미소보살이 또다시 사라진 것은 며칠 전이었다. 없어졌던 그녀가 돌아와 이사장을 독대하던 날, 명안전에서 들려오던 그녀의 울음소리가 내 귓가에 남아 있었다. 상처 입은 짐승의 단발마적인 울부짖음 같았다. 아무도 감히 이사장 앞에서 그렇게 울부짖을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러나 그녀는 울부짖었다. 날이 저물 때쯤에야 명안전에서 비틀거리며 내려온 그녀는 잠깐 사이 몰라보게 늙은 얼굴이었다. 인터폰 연락을 받은 백주사가 허겁지겁 명안전으로 불려 올라갔고, 그녀는 붙잡는 애기보살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외진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애기보살이 쫓아가 문을 두들겨도 그녀는 기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사흘째 되던 날 밤에 다시 사라졌다.
아침에 방문이 열려 들여다보았더니, 그녀가 흔적 없이 사라졌더라고 했다. 야간경비가 있었지만 명안진사를 나가는 그녀를 본 사람은 없었다. 명안진사에서의 모든 일을 가장 소상히 아는 사람은 백주사 다음으로 그녀였다. 야간 경비의 눈을 피해 명안진사를 떠나는 것쯤 그녀에겐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웠을 터였다. 소지품은 다 그대로 있었다. 이사장과 그녀 사이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골이 깊어진 게 틀림없었다.
“혹시 이사장이 어디로 데려가 감금한 건 아닐까요?”
그녀가 사라졌단 말을 듣고 207호실 최순경이 말했다.
그의 제안으로 운악산 정수리까지 함께 야간산행을 할 때였다. “그럴 리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사장에 대하여 호기심을 과도하게 갖고 있는 이 젊은 순경과 더 가까워지지도 더 멀어지지도 않은 정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필요한 정보를 그에게서 얻었고 그는 그에게 필요한 정보를 나에게서 얻었다. 이를테면 이사장이 샹그리라 건물 부지를 얻은 것이 제대하기 불과 반년쯤 전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를 통해 확인했고, 이사장이 병자들에게 돈을 받고 제공하는 명안수의 샘플을 그에게 건네준 것은 바로 나였다. 우리에게는 피차 어떤 묵계 같은 게 있었다.

“조사해보니 여러 사람이 실종됐어요.”
젊은 순경이 덧붙여 말했다.
“이사장에게 속아 재산을 빼앗겼다고, 이사장의 비리를 신고했거나 인터넷 등에 올린 사람들이에요. 증거불충분이어서 조사조차 이루어진 경우도 없지만요. 내가 확인한 것만 해도 적어도 다섯 명 이상이에요. 감쪽같이 사라진 사람들이요.”
“그거야 뭐, 우연이겠지…….”
나는 그의 유도심문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짐짓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의 내사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었는지 나는 물론 알 수 없었다. 내가 그렇듯이, 그도 정보의 핵심은 내게 감추고 있는 눈치였다. 수사를 공식화하지 않는 걸로 보아 그가 수집한 정보도 대부분 정황에 불과할 터였다. 말단순경의 입장에서, 경찰 고위층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사장에 대해 잘못 짚었다가는 순경 자리마저 위태로울 것이라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