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다 ⑤ 스마트 시대의 주인이 되자-(下)스마트 소외, ‘정(情) 공동체’가 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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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혁명의 미래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과잉과 결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스마트 혁명가들은 ‘10월의 하늘’ 프로젝트처럼 ‘넘치는 사람’이 ‘모자라는 사람’을 돕는 아날로그적 ‘정(情) 공동체’에서 해법을 찾는다. 그런가 하면 랜덤웍스의 디지로그 협업은 스마트 세대가 일하고 소통하는 방식의 또 다른 전형을 보여준다.

이나리·김한별 기자

‘스마트 혁명’은 만인의 혁명이다. 남녀노소,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다. 세계를 하나로 묶고 누구나 첨단 기술의 열매를 누릴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여기에도 그늘은 있다. 과잉과 결핍이다. 스마트 중독이 ‘과잉’의 문제라면, 정보 격차는 ‘결핍’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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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셰리 터클(Sherry Turkle·정보기술사회학) 교수는 최근 펴낸 책 『다 함께 홀로(Alone Together)』에서 지인의 장례식장에서조차 아이폰을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대화’에 몰두하는 사람을 예로 들면서, “(스마트) 기술 탓에 공동체는 점점 더 비인간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스마트 중독’이다. 반면 ‘스마트 디바이드(smart divide)’를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 스마트 디바이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스마트 미디어를 십분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정보 격차를 뜻한다. 스마트 미디어가 아무리 쉽고 편하다 해도 활용 능력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재승 KAIST 교수는 “(스마트 혁명으로) 한순간도 ‘스마트’하지 않으면 뒤로 밀려나고 내몰리는 사회에 살게 됐다”며 “어떻게 이 안에서 개인의 행복감, 자기만족감을 높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디지로그적 속성이 실마리=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해법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단초는 스마트 혁명의 디지로그(digilog)적 속성이다.

키보드·마우스를 사용하는 PC와 달리 스마트 미디어는 손가락을 두드려 정보를 찾고 입력한다. 더 진보된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느낌은 더 아날로그적이다. 이 같은 아날로그적 친화성 덕분에 많은 사람이 거부감 없이 사용하고 있고, 그 덕에 오늘날 같은 대중적 혁명이 가능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아날로그적 대화’의 성격이 강하다. 인천대 이동후(신문방송학) 교수는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소셜 커뮤니케이션은 문자를 사용하지만 구어적”이라고 말한다. 마치 사람들이 가까이 둘러앉아 말을 섞듯 쌍방향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진짜 말을 사용하지만 (일방통행식이어서) 커뮤니케이션적 특징은 문자에 가까운 TV 방송과는 반대”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나눔의 문화가 해법=전문가들은 스마트 혁명 속에 내재된 이 같은 디지로그적 속성을 활용해 디지털(온라인)에서도 아날로그(오프라인)와 같이 ‘넘치는 사람’이 ‘부족한 사람’을 돕는 나눔의 문화, 정(情)의 문화가 형성된다면 ‘스마트 중독’ ‘스마트 디바이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소위 ‘이지 오블리주(easy oblige)’다. 이지 오블리주는 ‘부·권력·명성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책임’을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귀족의 의무)의 상대적 개념이다. 스마트 기술을 활용해 누구나 손쉽게 나눔과 봉사를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 책임을 뜻한다.

 지난해 아이티 대지진 때 지구촌에서 벌어진 릴레이 트위터 모금 운동이나, 한국 트위터리안(twitterian, 트위터 이용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정재승 KAIST 교수의 ‘10월의 하늘’ 프로젝트(그래픽 참조) 같은 재능기부 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이어령 고문은 “한국인 고유의 정(情) 문화야말로 디지로그의 근본”이라고 말했다.

◆디지로그(digilog)=디지털(digital) 기술과 아날로그(analog)적 감성의 융합을 뜻하는 조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전 문화부 장관)이 2006년 중앙일보에 연재한 글을 통해 처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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