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쉬·페이지 '색깔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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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수들이 가요계의 주류로 올라서면서 그 스펙트럼도 다양해지고 있다. 작곡자가 지어준 노래를 부르는 수준을 벗어나 직접 곡을 짓고 연주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실력파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최근 그룹 이름과 같은 타이틀곡을 들고 등장한 '허쉬' 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두명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구성된 실력파 듀오다. 두 멤버가 상의를 벗고 새하얀 가슴을 밀착시킨 채 찍은 음반 재킷은 상술이다. 음악에 그같은 묘한 분위기는 전혀 없다. 대신 팝적인 깔끔함과 풍부함이 돋보인다.

타이틀곡 '허쉬' 는 빠르고 꽉찬 요즘 댄스팝과 달리 90년대 초.중반에 유행한 퓨전재즈풍의 노래다. 템포도 중간빠르기로 복고풍이다. 리듬 앤드 블루스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관악기 반주에 두 멤버 조수아.김일진의 코러스가 흥겹다. 그밖의 9곡도 요즘 댄스가요와 달리 리듬이 여유롭고 클래식한 향취가 두드러진다. 디스코.애시드 재즈.라틴음악까지 다양하게 망라됐다.

두 멤버는 각각 한양대(김일진), UCLA(조수아)음대를 졸업한 클래식학도로 피아노 연주 솜씨와 작곡 실력을 갖춘 재원들이다. 음반에 각각 세곡씩 자작곡을 넣었을 뿐 아니라 직접 악기를 연주하고 코러스.편곡.프로듀싱에까지 관여했다.

한국가요에 흔히 들어가는 트로트 냄새를 싫어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노래가 팝 수준의 고급스런 곡이면서도 한국인들이 좋아할 수 있는 '가요' 라고 강조한다.

지난해 폴 모리아의 경음악을 배경에 깔고 부른 '미안해요' 로 인기를 모았던 페이지도 한결 성숙한 새 음반을 들고 나타났다. 김조한과 듀오로 부른 '세이 굿바이' 를 타이틀곡으로 한 새 음반은 발매 한달 만에 3만5천장이 팔리는 호응을 얻고 있다.

페이지는 다소 목청에 힘이 들어갔던 '미안해요' 에 비해 새 음반에서는 자연스럽고 자기만의 색깔도 살며시 엿보이는 노래 스타일을 선보였다. 리듬 앤드 블루스 발라드인 '세이 굿바이' 는 훨씬 선배격인 R&B스타 김조한과 듀오를 이룬 만큼 페이지로선 버거운 노래다. 부르는 분량도 김조한이 60%로 페이지보다 많다.

하지만 페이지는 조바뀜 부분의 힘든 음정을 잘 처리해내는 등 '선방' 해 자신만의 인상을 심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페이지는 '블루 노트' '놔' '내일 일기' 등 다른 수록곡에서도'다양한 장르구사와 ' 세련된 창법을 선보이고 있다.

바네사 메이가 연주한 듯한 일렉트릭 바이올린 선율이 이채로운 '블루 노트' 는 뉴에이지풍의 팝발라드이며, 레게풍 댄스 '놔' 는 어린이가 부른 듯한 귀여운 창법이 페이지의 또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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