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金), 좋은 투자 수단 아니다 투기꾼에게나 어울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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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호 22면

-요즘 투자의 세계가 요동하고 있다. 투자자들에게 어떻게 조언하고 있는가.
“장기 투자의 의미를 되새기라고 말한다. 장기 투자를 하는 사람은 돌발 사건이 발생해도 감정 기복이 크지 않다.”

2009·2010년 미국 최고 투자자문가 릭 에델먼의 통념 타파

-블랙스완을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충분히 정보를 수집해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면 동일본 지진 사태는 국지적인 사건이다. 일본 전체가 쓰나미에 휩쓸리지 않았다. 일본 자본이나 자원을 모두 쓰나미가 쓸고 가지도 않았다.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사건일 뿐이다.”

-방사능이 새나오고 있다.
“아주 심각한 요인이다. 중요한 변수이기는 하다. 해외 투자자들은 일본 정부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여긴다.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현재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면 일본 정부가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능력과 자원을 갖고 있다고 본다.”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에델먼의 저서 당신의 돈을 어떻게 구할까(사진 위)와 『돈에 대한 거짓말』의 표지.

-또 다른 변수가 있다. 유럽 국가채무 위기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그리스 가운데 어느 나라도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유럽 국가들이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 구제금융을 늘리지 않았는가.”

-유로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유로 시스템은 좀 다른 이야기다. 경제보다는 유럽의 정치 리더십에 달려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자국 내 지방선거에서 졌다. 메르켈이 독일 안에서 흔들려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이런 사태가 오래 가면 유로를 구하는 데 필요한 조치들(재정통합 등)을 밀어붙이지 못할 수도 있다.”

-달러화나 유로화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많은 전문가가 통화 가치가 장기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산업 생산이 급증해 돈의 양과 대략 균형을 이루면 심각한 인플레이션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 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은 낮다.”

-미 중앙은행이 출구전략을 서둘러 추진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경기가 되살아날 때까지 기다릴 가능성이 높다. 빠르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금융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미국 내 상황만 살펴보는 게 아니다. 유럽과 일본 상황도 감안하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많은 사람이 금을 사고 있다. 금이 물가상승이나 정치적 불안을 대처하기 좋다고 믿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금이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 아니란 말인가.
“정확하게 말해 좋은 수단이 아니다. 물가와 금값 변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인플레이션 시대인 1970~80년대 연 평균 7.6% 올랐다. 금값은 얼마나 올랐는지 아는가. 고작 4%였다.”

-이번은 예외일 수 있지 않을까.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금값이 하늘 높이 솟았다. 온스당 850달러까지 올랐다. 이후 금값은 추락해 99년 25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자산 가격이 이 정도로 출렁거리는 일은 아주 드물다. 투기꾼들이라면 좋아할 만한 자산이다. 타이밍만 잘 맞추면 횡재할 수 있어서다.”

-결국 금값은 다시 오르지 않았는가.
“2007년 금값이 다시 온스당 850달러를 넘어섰다. 그새 달러 가치가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2007년 850달러는 80년대 초 850달러만 못하다. 금값이 뚝 떨어졌다가 다시 회복하는 사이에 투자자는 배당이나 이자 수익을 포기해야 했다. 금에는 배당이나 이자가 없다. 기회 비용이 너무 컸다.”

-대안은 무엇인가.
“금은 아주 투기적인 자산이다. 가격 변동이 너무 크다. 시장 변동을 예측해 베팅하는 게임을 하려면 금이 좋은 대상일 수는 있다. 주식 투자가 금보다 좋은 인플레이션 대비책이라고 생각한다. 주가 상승률이 금보다 훨씬 좋았다.”
금융시장 상식을 깨는 말이다. 에델먼은 이 밖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말을 몇 가지 더했다. 그는 “중국 기업들의 주식은 아직 매력적인 자산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무슨 말인가.
“중국 경영자들은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주인의 돈을 요긴하게 써 좋은 실적을 내지 못한다. 주주들의 돈을 소중히 여기는 훈련도 돼 있지 않다.”

-지배구조가 문제란 말인가.
“전반적인 경영 효율이 낮다는 얘기다. 게다가 외국인들이 살 수 있는 종목수도 많지 않다. 분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을 무시할 순 없지 않은가.
“투자자들은 앞으로 상당 기간 중국 기업보다는 중국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낸 자국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도 중국 시장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기업이 있을 것 아닌가.”

에델먼은 장기 투자를 권한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장기 투자는 특정 자산을 오래 보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시장을 장기적으로 본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물어야 했다.

“한 투자자가 주식·회사채·국공채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짰다고 하자. 기존 장기 투자는 그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바뀌면 포트폴리오 균형이 깨진다. 수익률 높은 주식의 비중이 커진다.”

-수익률이 높은 주식을 팔아 균형을 다시 맞춰야 하는가.
“아니다. 수익보다는 가격이 높은 자산을 처분하고 값이 싼 자산을 사들여 포트폴리오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시장 상황에 맞춰 재조정하는 작업이 필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말이다.”

-다른 투자 요령이 있는가.
“투자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투자해 번 돈으로 언제 무엇을 할 것인지 미리 정해야 한다. 투자의 원칙은 긍정적인 문장이어야 한다. ‘돈 씀씀이를 줄이겠다’는 등의 부정적인 표현은 피해야 한다. 그런 말을 쓰면 즐겁지 않다. 투자해 번 돈으로 집을 사기로 했으면 집을 가꾸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겨보면서 꿈을 키우면 좋다.”

-경영 원칙을 알고 싶다.
“미국 투자자문사들은 수수료 수입을 늘리기 위해 부자들을 유치하려고 애쓴다. 나는 정반대다. 평범한 사람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부호들에게 조언하면 좋겠지만 그들이 많지 않다.”

-한국 정부가 헤지펀드를 곧 허용한다고 한다.
“우리 회사는 헤지펀드를 선호하지 않는다. 투명성이 떨어진다. 비용도 많이 든다. 대신 뮤추얼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많은 자산을 배분한다. 투자 기법이 복잡할수록 투자 비용은 불어난다. 투자자들에겐 손해다.”

-금융자산 투자만 조언하는가.
“절대 아니다. 우리는 집을 어느 동네에 얼마를 주고 사는 게 좋은가도 컨설팅한다. 투자자가 원하면 좋은 집을 물색해 사주기도 한다. 자녀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중요한 조언 대상이다.”

-투자 원칙이나 전략을 짤 때 무엇을 근거로 삼는가.
“수십 년 동안 검증을 거친 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을 짜야 한다. 온갖 사건을 겪으면서 단련되고 검증된 투자 경험이 있다. 단기적인 전술을 만들어주는 투자자문사는 오래가지 못하더라. 내가 요즘 동일본 지진에도 한국과 일본 투자를 줄이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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