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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시간 만에 쓴 편지, 기독교 역사 2000년을 움직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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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호 29면

바울의 『로마서』에는 원죄론, 예정론, 의인(義認justification·신이 인간을 죄에서 은총의 상태로 옮김) 등 훗날 다양한 기독교 신학으로 발전한 내용이 담겨 있다.

뭔가를 믿는다고 해도 ‘믿음의 농도’에는 차이가 있다. ‘진짜로 믿는 사람’과 ‘가짜로 믿는 사람’과 ‘미지근하게 믿는 사람’이 있다. 미국 철학자 에릭 호퍼(1902~1983)에 따르면 ‘진짜로 믿는 사람(true believer)’은 한 믿음에서 다른 믿음으로 믿음의 대상이 바뀌어도 뜨겁게 믿는 성향은 바뀌지 않는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18> 바울 『로마서』

바울은 전형적인 ‘진짜로 믿는 사람’이었다. 우리말로 바울로·바오로·파울로스·바우로로도 표기되는 바울은 유대교 신자였을 때에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맹렬히 박해했으나, 예수를 믿게 된 다음에는 스스로 ‘예수의 종’을 자처했다. 그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예수의 추종자들은 죽이는 게 당연했고 ‘예수의 사도’가 된 다음에는 예수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는 게 당연했다.

고시리아어판 성경( 5 세기 말)에서 『로마서』(6:12~10:7)가 나오는 부분.

모든 기독 교회들의 성인·사도
바울은 위대하다. 그는 교단·종파를 떠나 기독교 전체가 떠받드는 성인이자 사도다. 가톨릭·정교회·루터교·성공회는 그를 축일로 기념한다. 바울은 기독교 최초의 신학자·사상가다. 신약성서의 3분의 1이 그가 각지에 있는 교회나 인물에게 보낸 서간문이다. 약 20년간 전도자로 활동하며 로마제국의 동부 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2만㎞에 달하는 전도 여행 도중 바울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그는 결국 로마에서 순교했다. 성격이 급하고 고지식하고 불같았던 바울은 인생 후반부를 예수를 위해 살다 간 것이다.

바울은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을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가다 예수의 음성을 듣고 회심한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은 루벤스와 미켈란젤로와 같은 거장들이 그림의 소재로 삼기도 했다. 바울의 ‘이전 이후(before and after)’ 체험에는 전염성이 있다. 그가 지은 로마서를 읽고 마르틴 루터(1483~1546년)가 종교개혁의 신학적 근거를 확보했다. 존 웨슬리(1703~1791년)는 평생 성공회 사제로 남았으나, 루터가 지은 로마서 서문을 읽고 회심했고 웨슬리의 신앙 운동은 감리교 형성의 원천이 된다.

바울 신학의 영향으로 전개된 종교개혁과 개신교의 탄생에서 보듯, 바울은 분열과 갈등의 원인 제공자이기도 하다. 현대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기독교 내부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세속 사회 간의 갈등에 불을 지피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리스도교 성립을 둘러싼 예수와 바울의 관계는 신학·종교학·사학 분야에서 뜨거운 조명을 받아왔다. 과학 못지않게 이들 학문 분야는 바울과 관련된 ‘전통 신앙’에 적대적이었다. 상당한 지지를 얻은 평가는 바울이 예수와 더불어 그리스도교의 ‘공동 창시자’이거나 ‘사실상의 창시자’라는 것이다. ‘평범한’ 예언자였던 예수를 ‘신(神)의 아들’로 만든 것은 바울이라는 뜻이다. 예수는 유대교의 경계를 넘지 않았고 바울이 없었더라면 ‘예수 운동’은 유대교의 군소 종파로 끝났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에 못지않게 도전적인 주장은 바울이 예수가 전한 복음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바울이 “예수의 교리를 최초로 왜곡한 자(the first corrupter of the doctrines of Jesus)”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의료 활동을 펼치기 전 신학자로 명망을 쌓았던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년)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다. “가능하면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인용하는 것을 회피한다. 우리가 바울에게만 의존한다면 우리는 예수가 비유로 가르쳤고 산상설교를 행했으며, 제자들에게 주의 기도문을 가르쳤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도 일부 학자는 바울이 그노시스 신앙과 플라톤 철학의 신관을 포용해 복음을 오염시켰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예수가 전한 복음’과 바울이 전한 ‘예수에 대한 복음’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바울이 ‘생전의’ 예수를 만나보지 못했다는 게 지적된다. 일각에서는 복음서 자체가 복음서보다 20~50년 정도 앞서 집필된 바울 서간문의 신학에 맞춰 집필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여성 해방론자 바울
기독교와 세속 사회의 싸움에서도 바울이 고정 ‘타깃’이다.
현대 세계에서 모든 종류의 불평등은 단죄된다. 무신론자들과 진보적 신앙인들은 바울의 서간문에 일부 나타난 불평등의 정당화를 맹공한다. 바울은 노예제를 옹호하고 권위에 대한 순종을 강요했으며 남성우월주의자였으며 ‘반유대주의의 아버지’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바울이 동성연애를 단죄한 것도 도마에 올랐는데 바울 자신이 동성연애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동성연애에 대해 민감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러한 공격에 반격하는 것은 여러 각도에서 가능하다. 첫째, 바울은 만민의 평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예컨대 갈라디아서(3:28)에서 바울은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역설했다. 그렇게 보면 바울은 오히려 여성해방론자다. 둘째, 바울 서간문 중에서 현대 사회의 가치와 맞지 않는 부분은 위작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바울이 저자로 돼 있는 신학성서의 13개 서간 중에서 7개만 바울의 저작이고 나머지는 위작이라고 본다. 위작 6편은 어휘·문법·내용으로 봐 바울의 저작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기독교 내부 문제에 국한된 논란도 있다. 바로 바울의 서간 중에서도 가장 긴 로마서의 해석과 관련된 논란이다. 종교개혁가 필리프 멜란히톤(1497~1560년)은 로마서가 “모든 기독교 교리의 요약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가 신약에서 가장 중요하다며 가장 순수한 복음인 로마서를 외울 것을 권장했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 교회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다. 유대교 출신 기독교인들과 이방인 출신의 기독교인들이 서로 반목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방인 출신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등장 전에도 상당수가 존재해 유대교 회당에서 예배를 봤다. 그들은 할례를 받지 않고 음식 관련 율법 규정을 지키지는 않았으나 유대교의 ‘신을 두려워하고,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God-fearers, God-worshippers)’이었다.

반목의 본질은 구원에서 율법과 ‘예수에 대한 신앙’이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에 관한 것이었다. 신(神)의 인간 구원 계획에서 예수의 수난·죽음·부활이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인가의 문제였다. ‘오직 율법’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될 이유는 없었다. 문제는 ‘오직 예수’와 ‘예수와 율법’의 갈등이었다. 바울은 죄인인 인간은 누구도 예수에 대한 믿음 없이 신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오직 예수’에 가까운 주장이었다.

바울 자신이 믿음·행실 모두 강조
바울은 로마서를 비롯해 자신의 서간문이 성서의 일부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로마서는 성서의 일부가 됐을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을 정당화하는 중심 문헌이 됐다. 루터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믿음을 통해서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라는 로마서(3:28)에 주목했다. 루터는 로마서를 독일어로 번역할 때 믿음 앞에 ‘오직(allein)’을 추가했다. 독일어 어법을 고려할 때 ‘오직’의 추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개신교와 달리 가톨릭 교회는 로마서(2:6~8)에 주목해왔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꾸준히 선을 행하면서 영광과 명예와 불멸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고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면서 진리를 물리치고 옳지 않은 것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진노와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가톨릭도 인간이 신의 은총과 신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는 개신교와 마찬가지다. 다만 ‘믿음만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라 믿음의 실천과 선행도 중요하다고 본다.

바울은 율법이냐 예수냐의 문제에서는 예수를 선택했다. 그러나 바울은 믿음과 행실 모두를 강조했으며, 어쩌면 바울은 믿음과 행실 중 하나를 선택해 손을 들어주지 못했다.

1980년대부터 루터교·성공회 등 개신교 일각에서 가톨릭의 입장에 접근하는 ‘바울에 대한 새로운 시각(New Perspective on Paul·NPP)’이 제기됐다. 1세기 유대교-기독교의 문제를 배경으로 하는 로마서를 16세기 기독교 문제에 적용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바울이 반대한 율법주의는 할례나 음식 관련 율법에 국한된 것이지 선행 일반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 연구에 따르면 로마서 집필에 100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을 것으로 추산한다. 로마서는 1000년, 2000년을 넘어 역사에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바울이 모든 문제의 뿌리로 몰리고 있다. 이슬람 일각에서는 예수를 신으로 만든 바울이 기독교·이슬람 간 평화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착한 예수’와 ‘나쁜 바울’의 대결 구도를 넘는 또 다른 바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나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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