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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 열정이 재래시장 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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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달 28일 오후 대구시 감삼동 서남신시장. 쇼핑객이 북적거린다. 가게 판매대에는 파·미나리 등이 진열돼 있다. 야채 묶음마다 500원·1000원 등 가격표가 올려져 있다. 점포·통로 등이 깔끔해 재래시장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다. 시장 중앙에는 고객 쉼터와 어린이 놀이터를 갖춘 ‘고객 휴게실’(125㎡)이 있다. 휴게실에서 만난 김영선(32·여)씨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데다 친구도 만날 수 있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서남신시장은 여느 재래시장과 좀 다르다. 환경이 깨끗하고 상인들은 친절하다. 140개 점포의 상인들이 뭉쳐 문제점을 뜯어고친 결과다. 이 덕에 고객과 매출도 늘고 있다. 시장 주변에 대형 마트가 4개나 있지만 끄떡없다. 서남신시장은 지난해 10월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진흥원이 연 ‘우수시장 박람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는 등 각종 상을 10차례나 받았다.

 시장 개혁의 중심에는 현호종(44·사진) 상인회장이 있다. 그는 1990년부터 이곳에서 장사하고 있다. 군 제대 후 가게를 열어 가정용 철물·전기재료 등을 판매하다 지금은 액세서리점을 운영한다. 서남신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가 시장 개조에 나선 것은 2004년. 인근 성서·용산지구에 대규모 아파트가 생긴 이후 시장 손님이 계속 줄어들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대형 마트를 선호해서였다. 위기감을 느낀 그는 동료 3명과 상인회를 조직하고 사무국장을 맡았다. 그가 맨 먼저 한 일은 ‘공부’다. 경북외국어대가 개설한 ‘점포경영대학’에 등록해 시장 개선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상인들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반응은 싸늘했다. 일부 회원은 “쓸데없는 일 한다” “돈 바라고 한다”고 수군거렸다. 상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자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시장 개조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구청 등을 찾아다니며 시장 현대화지원사업을 따냈다. 그 결과 2008년부터 올해까지 시장에 아케이드·고객휴게실·공영주차장을 설치해 환경을 개선했다.

 고객 유치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상인·시민 씨름대회, 자선경매, 결혼이민여성 요리강습 등 매달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볼거리’가 있어야 사람이 모인다는 지론에서다. 쇼핑에 불편함이 없도록 신용카드 가맹점도 늘렸다. 가맹점은 전체 점포의 72%(전국평균 48%). 고객이 부담없이 살 수 있도록 반쪽짜리 수박을 팔고 상품마다 가격도 표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2006년 4000명 선이던 하루 평균 쇼핑객이 7000명으로 증가했다. 매출도 30% 가량 늘었다. 상인회 홍순학(44) 운영위원장은 “현 회장은 추진력이 강해 불도저 같은 사람”이라며 “그의 열정이 시장을 바꿨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사무국장으로 일하다 2009년 회장을 맡았다.

 “장사하지 말고 ‘사업’을 하라.” 현 회장이 상인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대기업이 고객을 관리하듯 한 번 온 손님이 다시 찾게 하라는 것이다. 그는 “고객 만족 방안을 끊임 없이 발굴해 서남신시장을 전국 최고의 쇼핑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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