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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진단 - 한국 원전 새 길을 묻다 (下) 원전 ‘업그레이드’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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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월성1호기는 내년이면 설계수명이 종료된다. 이처럼 설계수명이 끝나는 원전을 종료와 동시에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논란이 있다.

 최교서 한국수력원자력㈜ 언론홍보팀장은 “원자로 하나를 지으려면 3조원 정도 필요한데, 6000억원 들여 주요 부품을 교환한 뒤 계속 가동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이익”이라며 “미국도 104기 중 절반이 수명을 연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팀장은 또 “경제성뿐 아니라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이 참여해 수백 개 항목을 검사하기 때문에 안전성도 확보된다”며 “연장 운전 중인 고리 1호기도 지난 3년간 고장 한 번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합의되지 않은 수명 연장으로 불안감이 쌓인 상태에서 이번처럼 사고를 당할 경우 더 큰 불신과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돈이 아깝다고 무턱대고 수명을 연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분명한 사실은 오래된 원전보다는 새 원전이 사고 확률이 낮다는 점이다. 부품이 새것일 뿐만 아니라 업그레이드된 안전기술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명이 다한 원전을 폐쇄할 경우 즉각 다른 대안이 필요해진다는 점이다. 원전이 멈춘다면 그만큼 전력 수급에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돈 문제로 연결된다. 한수원 관계자는 “어차피 발전소 건설 비용은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해 충당하는데 현재 신용등급이 나쁘지 않아 조달이 어렵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투자비용을 회수하려면 여기서 생산한 전기를 한전에 제값을 받고 팔아야 한다. 현재 한전은 건설비용만큼 늘어난 원가를 보상해줄 여력이 없다. 정부의 공공요금 동결 방침 때문에 3년째 적자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요금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전기 구입비만 올려주면 한전이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방법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현재 90% 안팎인 원가보상률을 최소한 100%까지는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안전 때문에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을 폐쇄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의 ‘통 큰 결단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KAIST 원자력공학과 장순흥 교수는 “신규 대체 원전 건설에 대한 비용 분담을 국민이 수용한다면 정부로서는 원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민은 ‘중고 원전’에 대한 심리적 불안을 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국제적 공동 관리를 위해 1957년 유엔이 설립한 기구다. 145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본부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다. 원전의 안전기준을 제정하고 핵물질이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각국에서 원전의 수명을 연장할 때 전문가를 파견해 안전성을 평가하기도 한다.

‘원전 감독’ 독립화해 투명성 높여야

현재 정부의 원전 관련 업무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가 나눠 맡고 있다. 교과부가 안전(심의·검사 등)과 진흥(연구개발 등) 분야, 지경부가 발전(원전 건설·운영 등)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안전 규제·감독 기관이 진흥 분야를 함께 맡는 것은 운동경기 심판이 직접 선수로 뛰며 경기를 진행하는 격이다. 안전 규제 관련 독립성을 의심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지난달 25일 당정회의를 열고 원전 안전업무를 전담하는 독립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안전위)’를 7월까지 설립하기로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교과부의 안전 관련 기능을 따로 떼어내 독립시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때늦은 감이 있다”는 반응이다. 미국(1974년)·프랑스(2007년) 등 원전 선진국은 진작부터 각각 대통령과 총리 직속의 독립 기관이 원전 규제를 담당해 왔다. 반면 이번에 사고를 낸 일본은 한국과 같이 원전 진흥업무를 담당하는 경제산업성 산하에 관련 규제 기구를 두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정두언(2009년)·권영길(2010년) 의원 등이 각각 안전위 설치 법안을 발의했지만 지금까지 처리되지 않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가 불거지고 나서야 당정이 허겁지겁 나섰다”는 게 전문가들의 비판이다.

◆‘안전 경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사고 후 운영사인 도쿄전력(TEPCO)은 “지진·쓰나미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 뉴욕 타임스(NYT) 등 외신은 이번 사고에 앞서 다양한 형태의 ‘위험 경보’가 있었지만 TEPCO가 이를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1970년대 초반 가동에 들어간 후쿠시마 원전은 해발 4m 부지에 지어졌다. 1960년 칠레에서 발생한 역사상 최악의 지진(규모 9.5) 때 발생한 쓰나미가 3.2m 높이였다는 점 등을 반영한 설계였다. 하지만 이후 지진·쓰나미 예측 기술이 발달하면서 TEPCO는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쓰나미 예상치를 최대 5.4~5.7m(2002년), 6m 이상(2007년) 등으로 올렸다. TEPCO는 그러나 냉각수 공급용 비상 전기펌프 위치를 20㎝ 올렸을 뿐 쓰나미 방벽 등은 설치하지 않았다.

지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7년 니가타(新潟) 지방을 강타한 지진으로 TEPCO가 운영하는 가시와자키(柏崎)시 가리와(刈羽) 원전에서 미량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지진 규모는 설계 예상치의 2.5배에 달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지진이 원전을 덮칠 수 있음을 보여준 좋은 선례였다. 하지만 TEPCO는 이번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지진이었다”는 말만 반복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도 지진·쓰나미 관련 과거 원전 기준만 따지지 말고 획기적인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전특별취재팀=박방주(과학)·강찬수(환경) 전문기자·박경덕·김상진·최현철·김한별·채승기 기자·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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