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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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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현대차그룹은 2001년 2월 정몽구 회장과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이 출자해 자본금 25억원의 물류회사 ‘글로비스(옛 한국로지텍)’를 설립했다. 계열사들은 물류거래를 이 회사에 몰아줬다. 글로비스는 쑥쑥 성장했고 증시에도 상장됐다. 현대차그룹 오너 일가는 막대한 상장 차익을 올렸다. 삼성그룹도 2006년 삼성전자 등 4개 계열사가 기업보험을 그룹 계열사인 삼성화재에 몰아줬다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기도 했다.

 정부가 이 같은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과세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기로 했다. 공익법인을 통한 편법 상속·증여를 막기 위해 공익법인의 사후관리를 강화하고 관련 제도도 보완한다. 체납세액 징수업무를 민간에 위탁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정부는 31일 국세청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2차 공정사회 추진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조세정의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모범기업과 성실납세자를 우대하고, 고소득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성실신고 확인제(세무검증제)를 도입하며, 세금 없는 변칙 상속·증여를 막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기획재정부는 “2004년 상속·증여세의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했지만, 대기업의 계열사를 통한 변칙 상속·증여 행위가 아직도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감 몰아주기’는 대기업이 계열사를 설립한 뒤 회사 주식을 오너 일가 등에 넘기고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해 일감을 몰아줘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게 하는 관행을 가리킨다.

재정부는 최근의 사례를 심도 있게 분석해 과세요건, 이익계산 방법 등 합리적인 과세기준을 마련할 계획이지만 실제로 정책이 실행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들의 반발이 심한 데다 창출된 수익이 일감 몰아주기로 이뤄진 것인지, 아니면 정상적인 영업활동에 의해 이뤄진 것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영섭 재정부 세제실장은 “법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점이 있다”며 “지금은 방향만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단체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기업 경영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황인철 기획홍보본부장은 "계열사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와 변칙 상속 등은 ‘과거의 일’”이라며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과세정책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체납세액의 민간 위탁과 관련,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민간에 채권추심이나 신용정보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이 있는데 이들은 나름대로 엄격한 법적 규율을 받으며 소비자 보호장치도 갖추고 있다”며 “더 발달한 정보획득 장치와 네트워크를 가진 민간을 활용하면 좀 더 전문화된 징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경호·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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