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유행한 코 모양 중국서 금세 따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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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중국에서 온 성형외과 의사들이 30일 서울 논현동 BK동양성형외과 수술실에서 신용호 원장의 수술을 참관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이마나 입술 등에 주입하는 지방은 어디서 구합니까?” “환자 본인 걸 씁니다. 복부나 허벅지에서 뽑아내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순수 지방을 분리해 내죠.” “근육에도 주입하나요?” “피하지방층·근육·근육 아래 등에 고르게 주입해야 해요. 그래야 자연스럽죠.” 30일 오후 1시, 서울 논현동 BK동양성형외과 지하1층 회의실. 10명의 남녀가 푸른색 수술복을 입은 채 신용호 원장의 대답을 적느라 여념이 없었다.

질문도 쉬지 않고 이어졌다. 이들은 모두 중국에서 온 성형외과 의사들. 3~4명씩 조를 이뤄 오전 내내 각종 수술을 참관한 뒤 수술에 관해 궁금한 점을 묻는 질의응답이 이뤄진 것이다. 창춘(長春)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펑요핑(44·여)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동안 외모가 중국에서도 인기다. 대표적인 동안 성형인 지방이식수술 기법을 배우려고 왔다”며 “지난해에도 8일 정도 연수를 왔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의사들 사이에선 성형 기술과 트렌드를 배우려면 한국에 가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국내 성형 기술을 배우기 위해 단기 연수를 오는 중국 의사들이 늘고 있다. BK동양성형외과의 경우만 해도 지난해 800여 명의 중국 의사가 단기 연수를 다녀갔다. 업계에선 매년 수천 명이 다녀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현지엔 한국으로 단기 연수를 오려는 의사들의 비자 발급과 연수 일정 등을 조율해 주는 여행사가 성업 중이다. 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 학술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양대 김정태(성형외과) 교수는 “관련 업무를 보는 현지 업체만 해도 수십 개에 달한다”며 “개별적으로 유명 병원에 e-메일을 보내 연수를 추진하는 의사도 많다”고 말했다.

 이날 수술을 참관한 중국 의사들은 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와 대한성형의사회가 공동 주최하는 국제학술대회 참석차 방한했다. 4월 1일부터 3일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이번 학회엔 국내외 1000여 명의 의사가 참가한다. 미국·프랑스·일본 등 10여 개국에서 오는 의사가 300여 명이다. 이 중 절반가량이 중국에서 온 의사로 대부분 펑요핑처럼 단기 연수를 추가로 받는다.

 중국 의사들의 한국 단기 연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한류 열풍이 뜨거워진 약 5년 전부터다. 처음엔 중국 환자들이 한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영화나 드라마·인터넷을 통해 한국에서 유행하는 성형 기법을 알게 된 중국 환자들이 성형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아온 것. 익명을 요구한 한 성형외과 의사는 “코 수술의 경우 코끝의 들린 정도와 모양 등에 따라 유행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한국에서 유행한 지 1년 정도 지나면 중국인들도 ‘이렇게 해 달라’며 사진을 들고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후 중국 의사들의 방한 행렬이 본격화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9년 한국을 찾은 외국 환자는 총 6만여 명. 복지부 관계자는 “2009년 이전엔 정확한 집계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추청치를 비교해도 매년 배 이상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중국 성형외과 의사들의 국내 연수는 한국 ‘미(beauty)산업’의 세계화로 이어진다. 연수를 다녀간 의사들은 자신의 환자를 한국으로 보내게 되고, 이들 환자 대부분은 국내에 들어와 관광을 하거나 화장품과 패션상품들을 쇼핑한다. 국내 의료기기 수출로 연결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장을 맡고 있는 한림대 서인석(성형외과) 교수는 “우후죽순 생겨난 현지 업체가 중개를 주도하다 보니 병원 벽에 걸어 둘 홍보용 사진을 찍고 가는 식의 연수도 많다”며 “정부나 공신력 있는 기관이 나서 한국 성형의 세계화 작업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정선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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